수락산에서
<수락산 정상 향로봉의 모습>
아직 어둠도 채 가시지 않은 이른 시간에 전화벨이 요란하다. 그저께 검단산 등산 후 오늘 3.1절 공휴일에는 명지산을 가기로 약속했다. 조금 먼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아침 일찍 전화를 한다면 꽤나 서둘러야 할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으니 예산(예창기)이다.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참석할 수 없으니 차편을 알아서 하라고 한다. 서둘러 등반대장 중산(이윤석)과 두어차례 전화 끝에 오늘은 갈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그냥 가까운 곳에 가기로 합의했다.
10시 30분 지하철 7호선 장암역에 닿으니 중산, 청공(윤만수), 그리고 나 세사람뿐이다. 오랜만에 홀가분한 멤버로 구성하여 한가하게 산을 타기로 했다. 장암역에서 올라가는 길은 수락산역에서 올라가는 길보다 찾는 사람이 적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마음도 더 느긋하다. 장암역에서 석림사까지는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넓은 길이다.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올라간다. 햇볕이 따뜻하게 내려 쬔다.
석림사를 지나 계곡에 들어서니 평소에는 물도 별로 없는 골짜기에 무슨 얼음이 이렇게도 많이 얼었을까 싶을 정도로 계곡 전체가 온통 얼음폭포로 변해있다. 아마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쌓인 채 그대로 얼음으로 변했나 보다. 계곡을 따라 층층을 이루며 흘러내리듯 얼어붙은 얼음폭포는 골짜기 전체를 크고 작은 빙폭의 계곡으로 만들어 가히 장관을 연출한다.
계곡 북사면(北斜面)을 지나 양지 바른 산비탈에 이르니 봄기운이 완연하다. 산을 향해 올라가는 내 몸에서도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저 멀리 수락산 정상의 창공에는 솔개 한 마리가 높이 날아 산봉우리를 두어바퀴 선회하다 눈앞에서 사라진다.
계곡을 지나 능선 위에 오르니 아직도 제법 많은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쌓여있다. 어느 자리가 햇볕이 잘 드는 곳인지 아닌지는 쌓인 눈을 보면 알 수 있을 정도다. 툭툭한 눈을 밟으며 산을 향해 올라간다. 저 멀리 홈통바위에 두어명의 등산객이 줄을 타고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 왠지 피하고 싶은 코스다. 산 위에서부터 아래로 길게 펼쳐진 30~40미터에 달하는 대형 슬랩구간(경사진 암벽 구간) 중앙을 따라 사각형의 홈이 아래위로 쭉- 파인 홈통바위는 로프가 설치되어 있어 실제로 지나가 보면 별건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그 앞에 서면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든다.
홈통바위를 우회하여 헬기장에 이르니 정상을 눈앞에 둔다. 시간도 1시경이라 햇볕이 잘 드는 비탈진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꺼내든다. 셋만의 단란한 식사를 즐기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은 점이 있고 적으면 적은 대로 좋은 점이 있는 것인지? 마음이 홀가분한 느낌이다.
점심을 마친 후 수락산 정상을 향한다. 헬기장에서 약 10분 정도의 거리다. 수락산 정상에도 사람들이 별로 많지는 않다. 오랜만에 정상의 창문바위를 통과해 본다. 수락산 창문바위는 정상에 있는 바위 몇개가 묘하게 겹쳐지면서 아랫부분에 창문 모양의 사각형 통로가 생겨 그 사이를 드나들 수 있도록 되어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많아 그냥 지나치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많지 않아 한번 지나가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연초에 창문바위를 통과하면 그해는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한다. 오늘이 3월 1일이라 연초는 아니지만 3월 초일이니 1년 재수는 아니라도 3월 한달 재수는 좋겠지! 괜한 기대감에 젖어본다.
정상을 지나 철모바위 앞에 이르니 깔딱고개쪽에서 사람들이 많이 올라와 길이 막히니 옆길로 내려가라고 누군가가 충고한다. 비닐장막 앞에서 파는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고 남서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늘 다니는 중계동 방향이다.
<철모바위>
코끼리바위에 이르니 수많은 사람들로 길이 꽉 막혀있다. 그저께도 검단산을 갔다왔으니 대충하고 옆 계곡길로 내려가자고 말하며 수락계곡쪽을 향한다. 날씨가 좋은 탓인지 왠 아주머니의 간들어진 목소리가 산비탈 사이에 요란하게 들려온다. 봄이 되긴 됐나 보다.
느슨한 마음으로 계곡길을 내려오니 수락산 노래마당에서 한 중년의 남자가 큰소리로 노래한다. “울지~마~ 울긴 왜 울~어~~” 나훈아의 노래를 부르며 폼까지 멋지게 잡는다. 수락산 노래마당은 어떤 남자가 주일마다 등산을 끝내고 내려가는 길에 이 자리에서 주변의 사람은 아랑곳없이 노래를 쭉- 뽑고 가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너도나도 마음만 내키면 아무나 노래를 부르고 주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쳐주기도 하는 곳이다. 오늘은 갈색 밤모자를 쓴 이 중년남자의 무대가 되었나 보다.
사람들 틈에 끼여 밀려 내려오듯 계곡을 빠져오니 양 길가에 노점상들의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산행 후의 막걸리 한잔이 기분을 녹이는 데는 그만이지만 산 입구에 이런 노점상들이 음식장사를 한다고 주변을 어지럽히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수락산역 주변에는 우리가 늘 가는 사우나탕이 있다. 셋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우나를 끝내고 근처 감자탕집을 하나 물색하여 감자탕에 소주 한잔을 곁들여 식사를 하고 오는 일요일을 약속하며 헤어진다.
등산지도(http://www.koreasanha.net/san/map/surag_bulam2.jpg)
2005. 3. 1 수락산을 다녀와서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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