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에서(2005. 1. 22)
불암사의 아침은 한가롭기만 하다. 게으른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불암사에서는 스님들이 아침 예불을 드리는지 목탁소리에 맞춰 노승의 불경 읽는 소리가 들려온다. 간간이 기침소리까지 섞여 늙은 육신에서 흘러나오는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가뜩이나 알 수 없는 불경소리를 더욱 더 오리무중으로 몰아넣는다.
주일마다 가는 등산이지만 그때마다 어려움은 있는 것인지? 큰산이든 작은 산이든 올라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큰산은 큰 대로 어려움과 쉬움이 있고, 작은 산은 작은 대로 어려움과 쉬움이 있다. 그러나 어느 산이든 처음 올라가기 시작할 때는 늘 힘들고 숨이 차다. 아직 호흡이 조절되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천천히 올라가니 몸에서 조금씩 땀이 나기 시작한다. 이젠 옷을 한 꺼풀 벗으라는 몸의 신호체계가 작동하는 것이리라.
친구들과 어울려 가는 등산도 좋지만 때로는 혼자 가는 등산이 더 유익할 때도 있다. 산을 오르며 천천히 내 안에 있는 나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 지난주는 어떻게.......?" "뭐- 특별한 게 있어야지." "혹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은 일은 없니?" "늘 그렇지 뭐. 그래도 어떻게..... 열심히 다녀야지...... 먹고살려면......"
살다 보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안에 있는 내가 점점 오염되어 가고 있다. 세상에는 보고 배워야 할 것도 많지만 보지 말아야 할 것도 많고 알지 말아야 할 것도 많다. 그 속에서 내가 성숙하고 또 늙어 가는 것이리라.
호흡이 천천히 안정되면서 내 안의 나를 점검한다. 구석..... 구석...... 마음의 눈을 열어....... 가슴과 뱃속을 먼저 살펴보고 이어서 팔다리를 점검한다. 별 이상이 없다. 마지막으로 머리 속도 들여다본다. 자동차 정비공이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차의 성능과 고장 유무를 마음속으로 점검하듯이 나는 걸어가면서 나를 점검해 본다. 한오십년 굴린 꽤나 오래된 중고품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쓸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대로 잘 관리하면 아직도 한십년 정도는 크게 수리하지 않아도 무난히 쓸 수 있으리라.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그다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혼자만의 독백을 즐기는데는 사람도 적은 것이 좋은지 한적함은 마음속의 분위기를 더욱 내성적으로 몰아 간다. 어느새 노승의 불경소리도 끊기고 들려오지 않는다.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소나무겨우살이로 엮어 만든 여승들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모습을 닮았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하였다는 불암산은 불암동 마을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뽀죽하게 솟아오른 산봉우리 아래 둥글고 거대한 암벽덩이가 자리잡고 있어서 마치 산 전체가 그냥 그대로 하나의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보이고, 또한 그 육중한 무게에서 나오는 웅대한 기상은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는 듯 하다.
바위능선에 오르니 지난주에 눈이 조금 내리긴 했지만 양이 많지 않고, 햇볕이 좋았던 때문인지 모두 녹아 바위는 단단하게 발 밑을 잡아준다. 빠닥-!빠닥-! 바위에 올라붙는 신발 끝의 감촉이 상큼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내 속에 쌓인 상념의 찌꺼기를 말끔히 날려보내리라.
해발 507미터. 불암산 정상의 표지석이 나의 위치를 알려준다. 맑은 날씨 탓인지 사방의 경치가 매우 깨끗하게 들어온다.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의 산봉우리 주변에 희미하니 옅은 안개 같은 띠가 보인다. 아마 공해 탓이리라. 발밑 바로 아래에는 불암산 특유의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둥그스럼하게 그 볼륨을 자랑하며 펼쳐져 있다. 바위 끝을 보는 순간 아찔한 생각이 머리끝에서부터 짜릿한 전율로 전해진다. 저 바위덩이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촛불처럼 금방이라도 꺼질 것만 같은 나약한 생명이다.
바위능선을 따라 천천히 조심스럽게 산을 내려온다. 몸의 무게중심이 더 높은 곳에 있고 지면과 눈 사이의 거리가 더 멀기 때문에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더 위험하다. 뻣뻣한 몸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각별히 신경쓰면서 조심스럽게 내려온다. 늙어 죽을 때까지 별탈 없이 잘 쓸려면 조심스럽게 관리해야지.
불암산의 주능선은 서쪽으로는 중계동을 기점으로 하여 헬기장이 있는 또 다른 작은 봉우리를 거쳐 정상으로 이어지고, 다시 동쪽으로는 당고개역에서 남양주를 잇는 덕능고개로 그 능선을 연장하여 수락산과 연결된다. 그 사이사이에 불암동, 상계동 등 많은 길들이 연결되어 있다.
헬기장 봉우리에 닿아 점심을 꺼내 들었다. 점심이래야 그저 컵라면 하나에 식은밥 한 덩어리가 전부다. 따뜻한 햇볕아래 반찬 하나 없는 컵라면이 그렇게도 맛있을 수가 없다. 가난한 행복을 마음껏 즐기며 만족감에 빠져든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서도 이렇게 행복한 것을-!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파고 든다.
중계동 능선을 따라 내려오면 아주 완만하고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다. 마치 연인들이 소곤거리며 걸어감직한 정말 아기자기한 오솔길이다. 양옆에는 알맞게 자란 소나무가 길이 끝날 때까지 이어져 산림욕장을 무색케 한다. 이런 산길이 있는 줄 모르는 사람들은 괜스레 북한산, 도봉산과 견주며 산이 작다 비하한다. 혼자만의 독백으로 능선 길을 즐기며 천천히 내려오니 마음속에 쌓인 상념의 찌꺼기가 깨끗이 날아간다. 오늘 산행도 좋은 결실이 있었으리라.
등산지도(
2005. 1. 22 불암산을 다녀와서.....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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