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에서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이 울적해지는 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니 괜히 마음이 무거워지면서 아무 말도 하기 싫어진다. 이렇게 울적할 땐 등산이 최고라며 휴일이면 으레 갈 등산을 마치 기분 탓으로 가는 냥 돌리고 집을 나선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전부터 한번 가야할텐데 하고 생각하던 도봉산을 가기로 했다. 사실 도봉산은 내가 매우 좋아하는 산인데 내 등산친구들은 도봉산 이야기만 나오면 '입장료가 비싸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복잡하다.' '눈이 와서 위험하다.' 등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번번이 다른 산으로 가자는 바람에 올 겨울엔 제대로 가보지도 못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산을 찾는 사람들이 일요일에 비하여 월등히 적다. 매표소를 지난 도봉산 입구에는 '북한산국립공원'이라고 새겨진 큰바위가 하나 세워져있다. 원래 도봉산도 북한산의 한 자락이지만 이곳 도봉동쪽 산을 별도로 분리하여 도봉산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도봉산 입구에서 유심히 살펴보면 우암 송시열선생의 '道峯洞門'이란 친필이 새겨진 오래된 바위를 하나 볼 수 있다. 도봉동으로 들어서는 문이란 뜻이다.
등산객들에 섞여 광륜사를 지나 오른쪽 방향으로 올라간다. 내가 즐겨찾는 코스인 은석암 방향을 거쳐 다락능선을 타고 정상으로 올라 갈 생각이다. 이 코스는 다른 길보다 다소 길이 멀긴 하지만 찾는 사람도 적어 길 입구가 덜 복잡할 뿐만 아니라, 능선에서 바라보는 주변 경관이 좋고, 또 아기자기한 바위능선 구간이 많아 올라가는 재미가 그런대로 괜찮은 곳이다.
산속으로 들어서자 본격적인 봄날씨로 접어들었는지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어쩐지 내가 입고 있는 옷이 거추장스럽고 더워지는 듯한 느낌이다. 등산로 양옆에 빽빽히 들어선 나무가지 사이로 찾아드는 햇살은 봄이 되었음을 여실히 느끼게 한다.
능선 위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바위들을 손으로 잡고 올라가니 겨우내 스며있던 바위의 찬기운은 이미 다 날아가고 없고, 햇살에 달아 오른 바위 표면의 따끈한 느낌이 손끝으로 전달된다. 초입부터 숨이 차다. 지난 겨울동안 주일마다 열심히 산을 찾았지만 그래도 운동 부족인지 조금 밖에 올라오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린다.
두어번 바위자락을 올라 은석암 근처에 있는 큰바위 위에서 저쪽 산위를 바라보니 도봉산의 정상인 선인봉과 만장봉, 자운봉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사실 내가 도봉산을 좋아하는 이유도 이들 세봉우리의 매력 때문이라 해야 할 것 같다.
<다락능선에서 본 도봉산 - 왼쪽부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배낭에 넣어온 떡을 꺼내 몇조각 먹고 다시 다락능선으로 올라간다. 다락능선에서는 포대능선의 주능선을 바라볼 수 있다. 길게 뻗어 사패산으로 연결되는 포대능선은 곳곳에서 연출되는 암봉들의 용출이 아름다운 굴곡을 그으면서 자꾸만 나의 눈을 유혹한다.
<다락능선에서 - 왼쪽이 자운봉, 오른쪽 능선이 포대능선이다>
능선 한쪽켠의 바위에 올라 도봉산 정상을 바라본다. 선인봉과 만장봉, 그리고 자운봉이 만들어낸 아름다움에 취해서 나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낸다. 산아래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을 뿌리로 하여 깍아지른 듯한 암벽의 끝에 우뚝 봉우리를 세워 올리고 그 위로 그려진 파란 하늘은 봉우리의 여백을 깨끗하게 채워 한폭의 동양화를 만들어낸다.
선인봉의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회백색 화강암의 매끈하고 고운 살결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인내와 절제로 다듬어진 건강한 선비의 모습이다. 만장봉은 선인봉의 자세가 다소 낮음을 걱정하는지 바로 옆에 붙어 봉우리 끝을 한칸 더 올려 선비의 격을 한층 더하면서 선인봉과 함께 길게 늘어뜨린 암벽으로 선인봉의 뿌리를 더욱 넓게 펼쳐준다.
홀로 우뚝 솟아있는 자운봉은 이 산의 최고봉으로 손색이 없을 만큼 고고한 기상을 간직한 채 저 높은 곳에 조용히 서있다. 자운봉의 옆으로는 포대능선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아기자기한 선을 그리며 길게 늘어선다.
포대능선의 암릉구간은 능선 위에 있는 암봉들의 굴곡도 심하고 능선 양옆으로는 깍아지른 절벽이어서 매우 위험하다. 쇠밧줄이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지나다닐 수는 있지만 눈이 많은 겨울에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코스다. 몇차례 지나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포대능선 방향에서 자운봉쪽으로 넘어가는 일방통행길로 생각하지만 그 반대로 넘어오는 사람들도 가끔 있어서 밧줄위에서 얽히고 설키는 혼잡을 겪기도 한다. 오늘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포대능선에서 본 자운봉과 능선의 암봉들 - 가운데 조그맣게 솟은 봉우리가 신선대>
포대능선을 지나 자운봉의 뒤를 돌아 신선대로 올라간다. 신선대는 자운봉의 바로 뒤에 있다. 신선대 위에서 바라보면 주변의 경관이 대단하다. 지나온 포대능선의 아름다움과 자운봉을 위시한 주변의 봉우리들의 힘찬 기세, 그리고 반대편으로 이어진 도봉능선 위에 있는 봉우리들의 굴곡들이 줄줄이 엮어지면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신선대를 거쳐 도봉능선으로 내려서니 뒤에 보이는 칼바위 또한 일품이다. 잠시 산행계획에 대해 망설여 본다. 칼바위를 지나 우이암 방향으로 계속 갈 것인지 말 것인지 생각한다. 아무래도 오늘은 왠지 기분이 우울해져 그냥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주봉(柱峯)을 옆으로 끼고 마당바위 쪽으로 내려간다.
하산길은 한적한 길이다. 산 뒷쪽으로 칼바위가 높게 솟아있다. 홀로 사색에 잠기며 산길을 내려온다. 마당바위에 이르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햇볕을 즐기며 바위 위에 모여있다. 하긴 이 바위는 매우 넓고 햇볕도 잘 들어 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점심이나 간식을 나눠 먹기도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천축사로 내려간다.
천축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이곳에 범상치 않은 기운이 자욱함을 느껴 옥천암이란 절을 세웠는데 그후 태조 이성계가 즉위 7년이 되는 해에 함흥에서 돌아오다 이 절터 뒤쪽에 서있는 만장(萬丈) 미륵봉을 보고 이곳에서 백일간 기도하며 여기는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는 의미로 천축사라고 개명하였다고 한다.
3월도 이제 하순에 접어든 탓인지 제법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작품사진을 찍으러 나온 사람들도 보이고, 새싹이나 꽃대를 카메라에 담아가려는 사람들도 보인다. 그러나 아직 새싹다운 새싹도 잘 보이지 않고 꽃대는 더 보기 힘든다. 어쩌다 길가 양지바른 곳에 조그마한 별꽃이 피었다면서 열심히 찍어대고 있지만 워낙 작은 꽃이라 봄소식을 대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마 일주일쯤 지나면 제법 꽃대다운 꽃대도 구경할 수 있으리라. 나도 지난주에 새로 산 디카로 봄소식을 담아보고자 몇카트 찍어보았지만 아직은 별무신통이다.
도봉대피소 옆을 지나 산 입구에 닿으니 산속에 묻혀 보이지 않던 사람들이 일시에
입구를 꽉 채운다. 너도나도 봄기운에 도취되었는지 한결 밝은 모습들이다. 오랜만
에 약수터에 들러 약수물도 한바가지 떠서 마셔본다. 햇살 속으로 찾아온 봄소식은
아직 완연하진 않지만 흙 속에, 바람 속에, 나무가지 속에, 그리고 산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까지에도 모두 전해졌으리라 생각한다.
등산지도(http://www.koreasanha.net/san/map/dobong_1.jpg)
2005. 3. 19 도봉산을 오르며
우 오 현
음악감상
Unchained Melody(사랑과영혼) - Righteous Brothers
자스민
Unchained Melody(사랑과영혼) - Righteous Brothers
Oh,my love my darling.
I've hungered for your touch.
A long lonely time.
And time goes by so slowly.
And time can do so much.
Are you still mine.
I need your love.
I need your love.
God speed your love to me.
Lonely rivers flow
To the sea,to the sea
To the open arms of the sea.
Lonely rivers sigh.
Wait for me,wait for me.
I'll be coming home.
Wait for me.
Oh,my love my darling.
I've hungered for your touch.
A lone lonely time.
And time goes by so slowly.
And time can do so much.
Are you still mine
I need your love.
I need you love.
God speed your love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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