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악산 산행일기(2005. 7. 10)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원산, 낭림산, 금강산을 거쳐 태백산까지 내려와 소백산, 지리산까지 뻗은 제일 큰 산줄기가 바로 우리나라 백두대간이다.
이 백두대간이 금강산을 향해 달리다가 분수령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것이 한북정맥(韓北正脈)이며, 한북정맥 양주에서 갈라져 적성 쪽으로 뻗어 간 산줄기가 감악산이다.
감악산은 파주시 적성면과 양주군 남면의 경계에 위치하는 해발 675m의 산으로 삼국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 왔다. 지역주민들에게는 ‘감박산’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고려사」나 「동국여지승람」에는 감악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 도성을 중심으로 북악, 송악, 관악, 심악 등과 함께 경기 오악의 하나로 지정되어 있다.
감악산은 신라 때부터 무속의 신산의 하나로 「태조실록」에 의하면 조선시대 궁중에서 이 산에 춘추로 별기은을 지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범륜사를 비롯하여 수월사, 봉암사, 미타암 등의 당과 절이 있으며, 중부지방에서 주요한 신앙처의 구실을 하며, 지금도 봄철에는 기도를 드리러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산중에는 지금도 폐사되어 없어진 감악사가 있는데 삼국시대 이래로 군사적 요충지로서 아래로 칠중성의 토성이 전개되어 있었다.
절의 뒷산 서쪽 봉우리에 용지가 있었는데, 가물거나 장마에도 물이 변하지 않고 기도에 감응이 있었다고 한다. 산의 정상에는 ‘감악산 신라고비’(속칭 ‘빗돌대왕비’ . ‘설인귀사적비’)가 있는데 이 일대는 삼국시대부터 한반도의 지배권을 다투던 삼국간의 혈투장이었고 거란 침입과 한국전쟁 때 고랑포 싸움의 주 전지였다. - 파주시의 감악산 안내판에서 -
* 설인귀(薛仁貴 614 ~ 683)
당나라의 무장. 강주(絳州) 용문(龍門:지금의 산시성[山西省] 지산 현[稗山縣]) 사람이다. 645년(보장왕 4년) 당나라 태종이 고구려를 공격할 때 군졸로 응모(應募), 안시성 공방전에서 공을 세워 유격장군(遊擊將軍)으로 발탁되었다. 658년 우령군중랑장(右領軍中郞將)으로 임명되어 고구려 원정에 나섰으며, 이듬해 횡산(橫山)에서 고구려군에게 패했다. 666년(보장왕 25년)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죽고 그 장남 남생(男生)이 아우 남건(男建)· 남산(男産)에게 쫓겨 당나라에 와서 원병을 청하자, 좌무위장군(左武衛將軍)으로 요동안무대사(遼東安撫大使) 계필하력(契苾何力)을 도와 다시 고구려를 침략했다. 그는 남건의 군사를 격파하고 남소(南蘇)· 목저(木底)· 창암(蒼巖) 등 3성을 함락시켰다. 668년 부여성· 평양성을 함락,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가 평양에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를 설치하자, 그는 검교안동도호(檢校安東都護)로 취임했다. 671년(신라 문무왕 11년) 계림도행군총관(鷄林道行軍總管)으로 신라를 침입했으며, 675년 신라의 천성(泉城)을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듬해 다시 침략했으나 소부리(所夫里)의 기벌포(伎伐浦)에서 패했다. 681년 과주자사(瓜州刺史)· 대주도독(代州都督)으로 임명되었으며, 다음해 돌궐을 격파했다. 뒤에 본위대장군(本衛大將軍)으로 임명되고 평양군공(平陽郡公)에 봉해졌다. - Daum 백과사전에서 -
3일간 지속되던 장마가 어제 오후부터 뜸해지더니 아침에 일어나니 깨끗이 개어있다. 날씨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라도 하는 듯 묘하게도 오늘 하루만 비가 멎고 내일부터는 또 다시 비가 내린다고 한다.
집사람을 재촉하여 미리 계획해 둔 감악산(紺岳山) 산행을 준비한다. 의정부북부 지하철역에서 내려 적성행 버스(25번)를 타고 한시간 가량을 달린다. 양주시를 거쳐 시골내음 물씬 나는 논밭길을 달려 우리가 내린 곳은 꼬불꼬불 외딴 산길 사이에 위치한 범륜사 입구 버스정류장이다.
범륜사 입구에서 너덜너덜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저 앞으로 부처님의 석상이 보이고, 등산객들의 차량인 듯 서너 대의 승용차가 그 주변에 서있다. 범륜사다.
범륜사 바로 아래에는 운계폭포가 있는데 마침 며칠 동안 내린 비로 계곡물이 풍부한 탓인지 35m나 된다는 폭포 위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는 그 위력도 대단하지만 폭포수가 만들어 낸 물보라의 시원함은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 내려준다.
<운계폭포 앞에서>
잠시 동안의 휴식을 뒤로 하고 운계폭포 위의 범륜사로 올라간다. 범륜사는 그다지 큰 절은 아니지만 「감악산범륜사사적비」,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석비」 등등의 석조물들이 몇 개 세워져 있어서 그런대로 아기자기한 분위기를 풍긴다.
범륜사 해탈교(解脫橋)를 지나면 불유각(佛乳閣)이라는 수각(水閣)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전한다고 한다.
『93년 가을 어느 날 새끼 밴 흑염소 3마리와 수컷 1마리가 범륜사 주위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거기서 고시를 준비하던 수험생들이 흑염소들의 우리를 지어 주고 길러주었더니 1년 5개월 만에 38마리로 늘어났다. 어느 목축업 하는 사람이 이를 보고 염소를 사 가면서 시줏돈 300만원을 주고 갔는데, 그 시줏돈으로 수각을 짖고, 불가(佛家)의 젖을 먹여 키운다는 의미로 젖유(乳)자를 붙여 수각의 이름을 불유각(佛乳閣)으로 지었다고 한다.』
범륜사 불유각(佛乳閣)에서 물 한바가지를 들이킨 후 산길을 재촉한다. 한때는 계곡 이었을까? 계속 돌무더기 길이 이어진다. 장맛비로 인해 길 곳곳에는 물이 흘러 넘치지만 그런대로 걸을 만은 하다.
비 때문인지? 아니면 서울에서 꽤나 떨어져 교통이 불편한 탓인지, 오늘 이 산을 찾은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총 산행시간도 대략 4시간이면 끝나는 곳이라 천천히 여유를 갖고 산을 오른다. 울창한 산림이 마치 터널을 이루기라도 하듯 나무숲은 양쪽 길과 하늘을 가득 덮고 있다. 간간이 길가에 돋아난 취나물을 한두 잎 따면서 힘든 산행에 애써 즐거움을 찾아본다. 집사람도 취나물 따는 재미에 빠져 즐거운 마음으로 산을 오른다.
대략 1시간 30분쯤 올랐을까? 감악산 안부에 도착한다. 왼쪽은 감악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임꺽정봉으로 가는 길이다. 먼저 감악산 정상으로 발길을 옮긴다. 안부에서 정상까지는 10분 정도의 거리로 별 특징이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산길이다.
<안부에서>
감악산은 가평의 화악산, 개성의 송악산, 과천의 관악산, 포천의 운악산과 더불어 경기 5악 중의 하나다. 바위 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쏟아져 나온다고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 바위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얼핏 멀리서 보면 순해 보이는 산이지만 일단 정상에 올라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도처에 암봉과 낭떠러지가 널려 있어 그 경계의 아름다움은 보기만 해도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올 정도의 절경이다
<빗돌대왕비>
정상에는 향토 유족 8호로 지정된 감악산 신라 고비(古碑)가 있는데 일명 「빗돌대왕비 또는 설인귀비」라고 한다. 이 비석은 글자가 마멸되어 자획(字劃)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데 그 생김새가 북한산의 진흥왕 순수비와 비슷하다 하여 진흥왕 순수비라는 설도 있고, 또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 고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설인귀비라는 설도 있다고 한다.
휴전선 가까이 있어 오랫동안 입산통제구역으로 묶여 있는 바람에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가 최근 몇 년 전부터 통제가 완화되어 등산객들의 발길이 잦아졌다고 하는 감악산 정상에는 군 초소가 하나 서있고 주변은 온통 철조망으로 둘러쳐져 있다. 인적조차 찾을 수 없는 산 너머 북쪽은 남방한계선인지 철거하다 만 듯한 확성기 몇 대가 흉측스런 모습으로 남아있다.
<감악산 북녁땅>
정상을 내려와 다시 안부를 거쳐 임꺽정봉으로 향한다. 임꺽정봉 조금 못 미친 지점에는 장군봉이 있고 장군봉 아래에는 과거 임꺽정이 관군의 추격을 피해 숨어 있었다고 하는 임꺽정굴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설인귀가 은거했다고도 한다. 임꺽정굴 앞에서 그 아래로 내려 뻗은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본다.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로 까마득한 낭떠러지 아래쪽은 끝이 다 보이질 않는다. 집사람도 위험을 느꼈는지 가까이 가지 말라고 성화가 대단하다.
감악산 정상이 완만하고 평평한 데 반하여 임꺽정봉과 그 주변 능선들은 그야말로 깎아지른 아득한 절벽이다. 봉우리 위에 서서 절벽 아래로 이어지는 까마득한 공간을 바라보면 거의 반사적으로 섬뜩한 느낌과 함께 촉각이 곤두선다.
임꺽정봉에 올라 서서 산 아래를 바라보면 원당리 방향의 작은 능선들도 아련하지만 건너편 부도골로 향하는 바위능선의 오르내림과 흑갈색 속살을 드러내고 수직으로 내려 뻗은 봉우리 아래의 단애들은 다른 산에서는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빼어난 경관이다.
초행길이라 일부 구간에서 잠시 헤매기도 했지만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순탄하게 부도골로 내려온다. 부도골을 거쳐 신암1리로 내려오는 하산길은 생각보다 길어 꽤나 시간이 걸린다. 이 길은 등산객들이 잘 다니지 않는 길인지 곳곳에 풀이 길게 자라 가슴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집사람의 걸음이 느려 조금 빨리 가자고 재촉했더니 오늘도 다리가 아프다며 투정이 심하다. 빨리 산길에 익숙하여 서로 보조도 맞추며 재미있게 걸을 수 있어야 할텐데.........
산불감시초소까지 내려오니 이쪽 산 아래에서 본 감악산 등산개념도가 세워져 있다. 임꺽정봉의 우뚝한 모습과 그 주변의 능선들의 융기가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감시초소를 지나면서 길은 시멘트 포장길로 바뀌고 조금 더 내려오면 신암저수지다. 지금은 낚시터로 운영하는지 낚시꾼들의 한가한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롭게 보인다.
신암낚시터에서 길을 따라 20∼30분쯤 더 내려오면 신암1리 버스정류장이다. 버스를 타고 의정부로 향하며 오늘 집사람과 함께 한 산행에서 보람을 찾아본다.
<등산지도 - http://www.koreasan.com/data/m/gam.jpg>
2005. 7. 10 감악산을 다녀와서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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