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흘산 산행일기(2005.7.23)
각흘봉은 38선을 훨씬 지난 경기 포천군 이동면 도평리에 숨은 듯 솟아 있다. 빼어난 계곡, 부드러운 능선, 웅장한 바위가 삼위일체를 이룬 각흘산은 대표적인 여름산이다. 아담하고 얕은 약3㎞의 물줄기가 흡사 처녀지를 방불케 하는 각흘계곡은 주변 경관 속에 파묻혀 고요히 흐른다. 그래서 이곳을 찾은 산악인들은 흔히 속세를 벗어나 수도의 길을 걷는 기분이라고 비유한다.
- 한국의 산천에서 -
아침 7시 집사람과 둘이서 차를 몰아 47번 국도를 시원스럽게 달린다. 아침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달리는 것만 해도 상쾌한데 차들이 많지 않아 엑셀레이터를 힘차게 밟으며 막힘 없이 달릴 수 있으니 마음마저도 시원해진다.
갈비촌으로 유명한 포천의 이동면을 지나 도평삼거리에서 김화 방향으로 차를 몰아 「한국성서대학수양관」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차를 다시 돌려 각흘계곡 입구로 들어선다. 저 앞 간이주차장에는 주차료를 받는다고 되어 있어 일부러 길옆에다 세우고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데 왠 남자 한사람이 따라오며 사유지이므로 그 곳에 차를 세워두면 안 된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다시 차를 몰아 수양관 조금 위의 빈터에 세워두고 다시 걸어 내려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계곡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계곡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계곡길과 689봉으로 올라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왼쪽 689봉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경사가 갑자기 심해지면서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오늘이 일년 중 가장 날씨가 덥다고 하는 대서(大暑)라고 한다. 이 쪽 능선이 이 시간대에는 햇볕을 정면으로 받는 곳이라 그런지 가면 갈수록 더위가 점점 더 심하게 느껴진다. 여름이라 그러려니 하며 쏟아지는 땀을 애써 잊으며 능선을 올라간다. 날파리들이 쉴새없이 얼굴에 와 붙는다. '습한 곳도 아닌데 왠 날벌레가 이리도 많을까.......'
능선은 시종일관 가파르게 이어지며 그리 높진 않지만 곳곳에서 암벽을 드러낸다. 뜨겁게 달아오른 지면 위의 마사토와 바위들이 얼굴을 녹여버릴 듯이 열기를 쏟아내고 있다. '오늘 같은 날은 시원한 계곡에 앉아 수박이나 깨먹으며 낮잠이나 자는 것이 최곤데......'
어느 듯 각흘산 정상이 가까웠는지 암벽이 점점 더 거칠어지고 밧줄도 더 많이 설치되어 있다. 마지막 사다리 밧줄을 타고 올라가니 여기가 정상인가 보다. 아무런 표지석이 없어 다소 싱겁다는 생각은 들지만 주변 어디를 봐도 이곳 보다 더 높은 봉우리는 보이지 않는다.
각흘산 정상은 해발 838m로 그리 넓진 않지만 사방을 잘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탁 트여있다. 동으로는 광덕산을 중심으로 상해봉과 박달봉이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보이고, 북으론 명성산이 아주 가깝고 선명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산 아래는 짙은 녹음으로 가득찬 크고 작은 능선들 사이로 철원으로 달리는 47번 국도의 모습이 띠음띠음 이어진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얼굴에 와 닿는다. 어디 피할 곳이 좀 있어야 할텐데........ 정상에는 몇 그루의 적송들만 외로이 서 있을 뿐 우리 두 사람이 쉴만한 충분한 공간과 그늘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아침을 너무 일찍 먹어 아까부터 배가 고팠지만 마땅히 밥 먹을 공간을 찾지 못해 할 수 없이 그냥 내려온다.
하산길은 곧장 각흘계곡으로 향한다. 짙은 나무그늘과 넝쿨들이 우거진 수풀 사이를 지나 조금 더 내려오니 졸졸거리는 계곡물 소리가 들린다. '옳지! 저기서 식사도 하고 좀 쉬었다 가야지' 아마 각흘계곡 상류에 해당하는 곳인가 보다 배낭 속의 밥을 꺼내 먹으니 배가 고픈 탓인지 그렇게 꿀맛일 수가 없다.
물이 맑고 사람도 없어 물 속에 들어가 등목도 하며 그 동안 참았던 더위를 한꺼번에 씻어낸다.
토요일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더위 때문일까? 산중에서는 단 한사람의 등산객도 마주치지 않는다. 배도 부르고 시간도 넉넉하여 바위 위에 올라 몸을 뉘이고 낮잠을 청해본다. 귓가를 맴도는 맑은 물소리가 자장가처럼 달콤하게 들려온다. 늘 이렇게 맑고 조용한 곳에서 한가하게 지낼 수 있다면 신선인들 되지 못할까? 거의 2시간 동안 낮잠을 자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니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도 시간은 충분하지만 언제 내려가도 내려가야 할 것을.........
각흘계곡 상류는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던 듯하다. 곳곳에 잡목과 수풀이 우거져있고, 길도 좁고 억새풀이 무성하다. 계곡물 곳곳에는 깊은 산중에서만 볼 수 있는 약개구리들과 그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침식된 계곡 주변의 곳곳에는 빽빽한 원시림들이, 그리고 물가에는 세월따라 흘러내리고 갈고 닦인 바위더미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산을 어느 정도 벗어나는 지점이 되었다고 생각될 즈음 사람들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고 계곡 아래 쪽에서는 물놀이를 온 사람들의 북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요즘은 어느 산에서나 계곡의 좋은 터를 선점하여 자릿세를 받아가며 음식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맑은 물가에서 하루를 즐겁게 놀고 싶은 마음이야 백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지만 이로 인한 환경 피해가 오죽 심각하랴! 우리 모두가 이런 인식을 함께 하여 이런 곳의 음식은 아예 사먹지도 않고 팔리지도 않는다는 풍토를 조성해야 할텐데........
일년 중 가장 덥다고 하는 대서(大暑)를 이렇게 보내고 차를 달려 서울로 향한다. 아스팔트 위의 뜨거운 열기가 얼굴에 화끈거리며 다가온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더니 오늘 나의 산행이 그런 것인가 보다.
<등산지도 http://www.koreasanha.net/img/map_18.jpg>
2005. 7. 23 각흘산을 다녀와서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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