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악산 산행일기
<삶이란>
- 고원산악회 제공 -
삶이란
괴로움 속에서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눈물 속에서도 향기롭고
슬픔 속에서도 빛나며
외로움 속에서도 설레는 것입니다.
삶이란
무더운 여름날 소나기 같은 것
날마다 이렇게 무덥지만
소나기 한줄기 내리면 지난 더위는 모두 잊어버리는 것처럼
아무리 힘겨움 속에서도
새로운 내일
시원한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기어이 승리하는 것이지요
삶이란
괴로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괴로움을 아는 것이고
그 괴로움 안에 있는 빛과 향기를 찾아내는
참으로 귀하고 순결한 노력입니다.
아침 7시 동대문종합시장 주차장을 빠져나온 버스는 동호대교를 건너 올림픽도로로 들어서더니 어느새 중부고속도로에 올라서 있다. 오늘은 고원산악회를 따라 치악산을 가보기로 했다. 고원산악회의 회원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등반대장은 64세라고 하며, 그 외에도 60세 전후의 회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영동고속도로의 새말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새말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안흥을 거쳐 9시 30분경 등산기점인 부곡리에 도착했다. 치악산 등산은 대부분 구룡사를 기점으로 하기 때문에 부곡리는 내게 생소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산악회장이 오늘 산행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면서 희망에 따라 각자 자유롭게 산행을 하고 16시 30분에 현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한다. 버스에서 내리니 22명의 회원들이 서너명씩 짝을 지어 두세 팀으로 갈라지더니 다른 길로 가버리고, 정상인 비루봉을 올라갈 사람들만 따라 오라고 하면서 회장이 앞장서서 걸어간다. 조금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마도 이 산악회의 특징이 그러한가 보다 생각하며 나도 그 뒤를 따라간다. 우리 비로봉 팀은 모두 8명이다.
시멘트 도로를 따라 조금 올라가니 매표소가 보인다. 매표소를 지나니 다시 산길이 시작되고 부곡리 산행 기점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서 있다. 비로봉 8.9킬로미터라고 한다. 길옆에는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찰찰거리며 들려온다. 곧은치(峙)계곡인가 보다. 시원한 나무그늘 사이를 걸으며 계곡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니 한가한 기분에 젖어 그냥 계곡에 들어가 퍼져 앉고 싶은 생각이 든다.
부곡리 길은 다른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길인 듯 우리 외에는 등산객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길을 따라가니 다리가 하나 나오고 일행들은 여기서 잠시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씻기도 하며 휴식을 취한다. 계곡은 생각했던 것 보다 수량이 풍부하고 물 또한 매우 맑아 여름 한철에는 좋은 피서지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행들이 곧은치계곡을 따라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산악회장이 ‘지금부터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한다’고 하면서 난데없이 길도 아닌 곳을 올라가기 시작한다.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회장이 앞장서서 가는데야....... 별도리 없이 따라간다. 지도상으로는 다리골과 원통골의 중간 정도 되는 산기슭이다. 회장의 말로는 지도상에 이름은 없지만 삼거리능선이라고 자신이 명명했다고 한다.
삼거리능선은 말만 능선이지 이건 숫제 길도 없이 나물캐는 사람들이나 찾아다니는 길인 듯, 사람이 다닌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비탈길의 연속이다. 회장도 올라가면서 혹 좋은 나물들이 없나 하며 눈을 두리번거린다. 이런 길로 가면 둘러가는 것 보다 시간도 많이 걸릴 뿐 아니라 체력 소모도 훨씬 많아진다. 발이 낙엽 속으로 푹푹 빠지면서 벌써부터 다리가 아프다.
한시간 이상을 이렇게 올라가니 어느 정도 능선의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저 멀리 비로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 길은 거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인 듯, 나뭇가지가 길을 가로막고 군데군데 낙엽이 깔려있어 길이 끊어지기도 한다. 그래도 산악회장은 이 길이 매우 익숙한 듯 빠른 걸음으로 나아가지만 나는 도무지 팔다리가 나뭇가지에 얽히고 설켜서 불편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는 나뭇가지가 얼굴을 활키며 부러지기도 한다. 짜증스러웠지만 이왕 들어선 길이니 돌아갈 수도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회장이나 다른 회원들은 치악산을 여러번 왔기 때문에 등산보다는 봄나물 캐는 일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미리 알았더라면 차라리 둘러오더라도 곧은치로 바로 올라가서 주능선을 따라 원통재를 거쳐 비로봉으로 갈 것인데........
한참을 헤매듯이 삼거리능선을 걸어 올라가니 어느 듯 정상적인 등산로가 나타난다. 이정표를 보니 치악산의 주능선인 것 같다. 어쨌든 이젠 정상적인 길로 들어섰으니 이 길을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조금 더 가니 주능선과 입석대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겨우 한숨을 돌리며 가져온 간식과 물 한모금을 마신 후, 이제부터는 산악회장이 없어도 얼마든지 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길을 따라 걸어간다.
쥐너미고개에서 들어오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는 안내판이 하나 있고 여기서 바라보면 삼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봉의 뒤로는 투구봉과 토끼봉을 거쳐 구룡사 쪽으로 내려가는 길과 연결된다. 그 왼쪽으로는 원주시의 마을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로봉 바로 앞 봉우리에는 헬기장이 하나 있는데 여기서 보면 비로봉의 전체적이 모양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렴폭포에서 올라오는 골짜기와 만나는 안부에서부터 설치된 나무계단을 따라 힘들여 올라가면 비로봉의 돌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비로봉에는 세 개의 돌탑이 세워져 있다. 이 탑은 원주시내에서 과자점을 운영하던 용진수씨가 꿈에 치악산 산신령의 계시를 받고 쌓았다고 한다. 꿈에 나타난 산신령은 '치악산 시루봉(비로봉)에 3개의 돌탑을 쌓되 너 혼자 힘으로 쌓아야 한다' 하고는 돌탑의 모양까지 말해주었다. 용진수씨는 그 날로부터 3년 동안 탑 쌓기를 시작하여, 삼일에 이틀은 탑을 쌓고 하루는 장사를 하면서 생활을 하였다.
탑쌓기를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탑이 완성되던 날 밤 탑은 무너지고, 그날 밤 산신령이 나타나서 다시 탑을 쌓으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그리하여 용씨는 다시 3년에 걸쳐 탑을 쌓았으나 역시 완성되던 날 탑은 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에도 산신령이 나타나서 다시 쌓으라는 말을 하여 또 다시 3년에 걸쳐 탑을 쌓아 마침내 지금의 미륵불탑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후 훼손된 부분을 원주시에서 복원하여 피뢰침까지 설치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한다.
치악산은 원래 단풍으로 유명한 산이다 구룡사 입구의 단풍은 10월이면 절정에 달하여 하얀 폭포와 어우러지는 단풍은 한폭의 수채화를 연상할 만큼 그 빛깔이 곱고 붉어 산 이름을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렀는데, 그 후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한 선비에 대한 꿩의 보은설화가 유래되면서 꿩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과거에서 장원급제한 그 선비는 꿩의 보은을 기리는 마음에서 그 자리에 상원사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정상의 난간에서 - 뒤로 보이는 능선이 내가 걸어 온 길이다.>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과 횡성군 강림면의 사이에 위치한 치악산은 단일 산봉(山峯)이라기보다는 북에서 남으로 매화산(1084m), 천지봉(1086.5m), 비로봉(1,288m), 향로봉(1,042.9m), 남대봉(1,181.5m) 등 1,000m 이상의 고봉들이 장장 14km나 이어지는 능선으로 치악산맥이라고 해야 할 만큼 그 산세가 웅장하고 험준하면서도 장대한 산줄기다.
'치를 떨고 악을 쓰며 올라가는 산’이라서 치악산이라는 말이 떠돌 만큼 산세가 크고 골이 깊어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한 고봉들이 솟구치고, 또한 계절마다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어서 많은 산악인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치악산은 1984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우리나라에서는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의 빼놓을 수 없는 명산이다.
구룡사로부터 사다리병창길을 따라 올라오는 등산객들을 뒤로하고 남쪽 능선 아래로 내려간다. 이 능선도 지도상에는 잘 나타나 있지 않는 길로서 올라온 삼거리능선을 마주보며 내려가는 길이다. 조금 내려가면 헬기장이 연이어 두 곳이나 나오면서 1004.9봉으로 내려와 곧은치계곡으로 연결된다. 이 길도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길인 듯 올라올 때의 삼거리능선보다는 나은 편이지만 사람들의 흔적이 거의 없다.
하산길은 대략 2시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정상에서의 시간은 아직도 4시간 정도가 남은 것 같다. 일부러 천천히 걸으며 더덕이라도 캘 생각으로 산기슭은 더듬어 본다. 갑자기 뒤에서 ‘우사장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산악회장님이 큰소리로 나를 부르며 내려온다. 내일 방송국 사람들과 산나물 파티를 벌리기로 했다며 산나물로 불룩해진 배낭을 메고 바쁜 걸음으로 하산한다. 일전에 보아두었던 곳에서 캤다고 한다.
혼자 천천히 산속을 뒤지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뒤에 쳐져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내려오며 앞질러 간다. 나도 더덕 몇 뿌리를 캐서 배낭에 집어넣고 곧은치계곡으로 내려오니 아직도 1시간 30분이나 남았다. 계곡으로 내려가 세수도 하고 발도 씻으며 시간을 보낸다. 일찍 내려가 봐야 버스 속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아니면 개인부담으로 송어회를 먹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할 것이 없다. 곧은치계곡의 물은 매우 맑고 차다. 금방 발목이 시려온다. 다시 한번 땀에 젖은 얼굴을 씻고 폭포가에서 사진을 두어장 찍은 다음 천천히 산길을 내려온다.
버스에 닿으니 아직 30분이나 남았다. 일부는 송어회 먹는다고 보이지 않고, 일부는 버스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오늘 산행팀은 산나물 채취에 관심이 많은 듯 버스 속에는 산나물이며 더덕 냄새로 가득하다. 한사람은 꽤나 큰 더덕을 두 뿌리나 캤다고 들어 보이며 자랑을 한다. 오늘의 장원격이다.
버스는 천천히 출발하여 다시 서울로 향한다. 나이가 많은 회원들이 대부분인지라 회장도 다음 산행 때에는 술, 담배 좀 적게 하고 몸만들기에 열중해서 더 좋은 산행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당부의 말을 잊지 않는다. 역시 나이가 있으면 생각도 다르고 행동도 더 신중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8시다.
등산지도(http://www.bsaa.or.kr/information/san/map/chiagsan.jpg)
2005. 5. 15 치악산을 다녀와서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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