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지방산행

태백산 산행일기(2005.1.23)

OHO 2005. 2. 24. 17:05

태백산에서

 


<태백산 정상 한켠에서 - 이여사, 유여사, 송여사와 친구 3명>

 

 

아침 7시.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군자 지하철역에는 하나둘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났다. 우리 등산멤버인 예산 예창기부부, 중산 이윤석부부(송여사 친구분들 3명 포함), 청공 윤만수부부, 사중 김동성, 도일 최수찬, 그리고 나 오호부부와 선후배들이다. 속칭 게릴라산행으로 태백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 산행은 27회 송두진 후배와 29회 김영성 후배가 주축이 되고 우리는 모두 객들의 입장에서 돈만 내고 그저 같이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산행이다. 태백산에는 요즘 눈꽃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종로3가에서 1차 탑승자를 태우고 출발한 버스는 약속시간보다 한20분 가량 늦게 도착하였지만 오랜만에 멀리 강원도까지 간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떠있어서 그런지 모두들 늦게 도착한 것에 대해 그다지 개의치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자 먼저 끼 있는 도일이 나서서 왁짜지껄 분위기를 몰고 간다. 버스는 천천히 시내를 벗어나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태백산 갈 생각에 마음이 들떴던 탓인지? 아니면 일찍 일어나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인지? 지난밤엔 영~ 잠을 설쳐 눈까풀이 따가웠다. 피로도 풀 겸 일찌감치 의자에 기대어 눈을 부치고 몸을 편안하게 했다.

 

버스는 어느 듯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순탄하게 가자면 제천을 거쳐 영월에서 상동으로 접근해야만 하는데 운전기사가 길에 익숙하지 않은지 GPS에 의존하여 지도상에 표시된 최단거리로 간다면서 신림톨게이트에서 빠져 지방도로로 접어드는 바람에 예정된 시간보다 한시간 가량이나 늦은 11시 20분에 태백산 등산로 입구에 도착하였다.

 

태백산은 강원도 태백시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의 경계에 위치한 해발 1,567미터의 산으로 우리민족의 시조이신 단군왕검의 신화가 깃들어 있는 신령스런 산이다. 산 입구에 닿으니 수많은 관광버스가 줄을 이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당초 등산기점으로 잡았던 유일사 입구까지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약 1킬로미터 앞 지점인 화방재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 일행은 대부분 부부 동반으로 모두 28명이다. 나도 집사람과 함께 차에서 내려 천천히 산을 향해 올라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따뜻한 날씨가 오늘 등산을 순조롭게 해 줄 것만 같다. 매표소에 이르니 아이젠을 하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눈이 많이 쌓여있었다. 올겨울 서울에서는 눈 구경도 못해 볼 정도로 강설이 거의 없었다. 이것도 요즘 말하는 기상이변 탓인지.......

 

산기슭에 들어서자 곧게 뻗은 자작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하늘을 찌를 듯 한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시원하다. 앞서가는 등산객들이 경상도에서 왔는지 그 특유의 떠들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며 올라간다.

 

조금 더 올라가자 유일사 입구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쳐졌다. 여기서부터 등산객들이 점점 더 많아지더니 위로 올라갈수록 등산길은 사람들로 꽉 차 이건 등산이 아니라 아예 피난 행렬 같다. 길 전체가 등산객들로 꽉 막혀버렸다. 틈틈이 갓길을 따라 앞질러 올라가니 그나마 정체된 답답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일행은 어디 오고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인파에 막혀 훨씬 뒤에 있음이라.

 

능선을 따라 올라가니 서서히 건너편 산들이 눈 아래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웬만큼 높은 곳까지 올라왔는가 보다 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수백년은 족히 되었음직한 아름드리 주목나무들이 헤아릴 수도 없이 서있다. 이곳이 주목 군락지라 한다. 일찍이 이렇게 큰 주목을 본적도 없지만 이런 주목이 이렇게 많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본적도 없었다. 너무 오래된 나무라 신을 하얗게 들어내고 죽은 가지가 나무마다 몇 가지씩이나 되고, 푹 파여 썩은 나무기둥을 시멘트로 채워 보강해 놓은 것도 많았다. 사진으로만 보던 태백산 고사목의 모습이다. 주변 경치가 좋아 사진이라도 한장 부탁하려고 '조금 기다리면 우리 일행이 오겠지...... ' 하고 기다렸으나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인파 틈에 끼여 모두 이산가족이 돼버린 모양이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약한 눈바람이 불어오고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한다. 멀리 능선 끝으로 하늘이 열리기 시작하고 곧이어 태백산 정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태백산 정상은 장군봉이다. 장군봉에는 천왕단, 장군단, 하단이라고 불리는 편마암으로 쌓아올린 천제단이 있다. 장군단은 정상을 올라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장방형의 제단이다. 그 곳에서 약 이삼백미터 떨어진 장군봉에 천왕단이 있다. 천왕단은 타원형의 제단으로 이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태백산의 제단 중 가장 크고 주된 제단이다. 하단은 특별한 이름이 없어 그냥 하단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제단 안에는 사람들이 들어가 절을 하며 소원을 빌고 있었다.

 


<천왕당 앞에서 - 중산>

 

 

천왕단 한가운데에는 '한배검'이라 쓰인 입석이 있다. '한배검'은 국조 단군할아버지의 우리 이름이라고 한다. 한민족을 뜻하는 '한'과 배달민족이란 뜻의 '배', 곰을 의미하는 '검'이라는 12회 김용구선배님의 설명이 나중에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나 돼지머리를 놓고 절을 할 수 있도록 해 두었기에 나도 향을 피우고 입석을 향해 삼배(三拜)하고  합장했다.(단군 할아버지 올해는 제발 로또복권 하나만......) 천제단 안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태백산은 산봉우리가 둥그스럼하고 매우 넓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다 품고도 넉넉하리 만큼 여유있는 모습이다. 산이 가파르지도 않고 큼직하여 남성적 포용력을 은근히 보여주는 마음 든든한 산이다. 약한 눈보라가 산 아래에서 불어온다. 산 입구에서 보았던 맑고 따뜻한 햇살은 간데 없고 주변은 온통 눈안개에 가려 잘 보이지 않고 바람마저 차갑다. 산 전체에 감도는 은은한 분위기가 환인과 환웅이라는 설화적 이미지를 풍기면서 더욱 은근한 신비감을 자아낸다. 바람을 피해 산봉우리 한쪽 귀퉁이에 앉아 추위에 얼은 손을 호~호~ 입김으로 녹이며 컵라면으로 끓여 점심을 해결하고, 혹 일행이라도 마주치면 사진이라도 한장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역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려면 좋든 싫든 열심히 찍사를 따라다녀야 하나보다.

 


<정상에서 본 문수봉 - 오른쪽 봉우리>

 

 

하산길은 만경사를 거쳐 당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바로 앞에 문수봉으로 가는 길이 있지만 눈안개로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데다, 또 일행과 떨어져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 어쩐지 꺼림직하기도 하다. 일행들과 같이 간다면 문수봉까지 가고 싶지만 상황이 좋지 않아 조금이라도 빨리 산을 내려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중에 문수봉이 김유신의 아들인 원술랑이 심신수련을 하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을 때는 그쪽을 거쳐 하산하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또 언제 태백산을 일부러 와 문수봉을 구경하랴......(나중에 알고 보니 도일만 문수봉까지 가고 우리팀은 전부 나와 같을 길로 내려왔다)

 

하산길은 가파른 비탈길이다. 곳곳에서 비료포대를 엉덩이에 깔고 미끄럼을 타는 것이 무슨 유행이나 되는 듯,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동심으로 돌아가 미끄럼타기에 열중이다. 본인이야 재미있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오히려 부딪힐까 겁난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니 당골이다.

 

 

 

 

 

 

 

 

 

 

 

 

 

 

 

 

 

 

 

 

 

 

 

 

 

 

 

 

 

 

 

<만경사로 하산하면서>

 

 

당골에서는 눈꽃축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분비고 있었다. 여러 가지 형상의 대형 눈조각품들이 늘려있었다. 스핑크스, 우스꽝스런 모습의 사람 얼굴, 말, 독수리, 용, 닭, 그 외에도 성이나 동굴 같은 것들도 있었다. 주변에는 음식을 파는 노점상과 관광객들로 길이 꽉 찰 정도다. 발에 밟혀 녹은 눈으로 길은 온통 질척거린다. 관광은 즐거움이지만 그 이면에는 늘 이런 부작용도 있는가 보다.

 



<태백산 눈꽃축제>

 

 

수많은 차들 사이를 헤매다 겨우 우리 버스를 찾아 올라가니 10회 박웅사 선배님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육십네댓살이지만 거의 매일 산에 간다는 박선배님은 문수봉까지 둘러보고도 이렇게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면서 은근히 노익장을 자랑한다. 우리 멤버들은 내려오는 길에 당골에서 사진도 찍고 하느라 약속된 시간보다 1시간이나 지나서 왔다. 그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어 찾느라고 법석을 떠는 등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버스는 서울로 향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으로 설렁탕  한그릇씩 먹고, 길몰라 어정쩡한 운전기사 중산대장의 코치하에 어둠 속을 달려 군자역에 닿으니 오후 11시 30분이었다. 모두들 피곤했지만 얼굴에는 웃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다음에 좋은 산 물색해서 한번 더 가자' 모두들 마음속에 한아름의 행복을 담고 헤어졌다.

 

2005. 1. 23  태백산을 다녀와서.......
오호

'등산 > 지방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위봉 산행일기(2005.5.29)  (0) 2005.05.31
소백산 산행일기(2005.5.21)  (0) 2005.05.25
치악산 산행일기(2005.5.15)  (0) 2005.05.15
지리산 바래봉 산행일기(2005.5.5)  (0) 2005.05.07
삼악산 산행일기(2005.4.16)  (0) 2005.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