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征歌(북정가)/南怡(남이)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석마도진)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고
頭滿江水飮馬無(두만강수음마무)
두만강 물은 말이 마셔 없애리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
사나이 이십에 나라를 평정치 못하면
後世誰稱大丈夫(후세수칭대장부)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일컬어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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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南怡 : 1443년~1468년 11월 11일(음력 10월 27일)는 조선 시대 전기의 무관, 척신이다.
할아버지는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이고, 할머니는 태종과 원경왕후의 넷째 딸인 정선공주(貞善公主)이며, 부인은 좌의정 권람(權擥)의 딸이다. 본관은 의령이다.
무예에 능하였으며 1467년(세조 13년) 함경도 일대에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고 또 북방의 여진족을 토벌한 공으로 1468년 27세의 나이로 병조판서에 올랐으나 예종때에는 병조판서에서 왕위호위직인 겸사복장으로 좌천되었고, 유자광(柳子光)과 한명회(韓明澮), 신숙주(申叔舟) 등의 공격을 받고 처형되었다. 특히 서얼 출신인 유자광이 이 북정가의 男兒二十未平國(남아이십미평국)이란 구절의 未平國(미평국 : 나라를 평정치 못하다)을 未得國(미득국 : 나라를 얻지 못하다)으로 고쳐 역모죄로 몰아 처형했다고 한다
남이의 무덤은 경기도 화성군 비봉면에 있고, 경기도 가평의 남이섬에도 하나 있는데 이 묘는 진짜 무덤이 아니고 남이장군를 기리기 위한 가묘라고 한다
순조 때인 1818년(순조 18년) 후손 우의정 남공철(南公轍) 등의 상소로 남이의 죄는 복권되었다. 시호는 충무(忠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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