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야화 등

중국의 4대 미인

OHO 2026. 2. 11. 17:58

(왼쪽부터 낙안 왕소군, 수화 양귀비, 폐월 초선, 침어 서시)

<중국의 4대미인>

중국에서는 아름다운 여성을 지칭할 때 "물고기를 가라앉히고 새를 떨어뜨리며 달을 숨게 만들고 꽃을 부끄럽게 한다" (沈魚落雁 閉月羞花 : 침어낙안 폐월수화)라는 말을 쓰는데 이 말은 다음의 중국 4대 미인들에서 비롯된 말이다. 

서시(西施)가 연못을 바라보자 헤엄치던 물고기도 넋을 잃고 헤엄치기를 멈추고 바라보다가 물속으로 가라앉았다(沈魚침어),
왕소군(王昭君)은 눈부시게 아름다워 하늘을 날던 기러기까지 날갯짓을 멈추고 바라보다가 땅에 떨어졌다(落雁낙안),
초선(貂蟬)은 달조차도 초선의 아름다움에 부끄러워 구름 뒤에 숨었다(閉月폐월),
양귀비(楊貴妃) 앞에서는 꽃들도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羞花)
라는 것이 이들의 아름다움을 지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외모 만으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빼어란 존재들이었지만 이들의 명성을 확립시켜 준 것은 바로 이들이 중국 역사에서 행한 중요한 역할 때문이었다. 시간 순서대로 4대 미인을 소개하면,

1. 서시 
서시는 기원전 5세기경. 중국 역사상의 격동기였던 춘추시대로, 제국은 분열되고 여러 왕국이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오나라의 왕 부차(夫差)는 월(越)을 정복하고 월왕 구천(句踐)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폐위된 왕과 그의 신하들은 부차를 물리치고 독립을 되찾기 위한 계략을 꾸몄다. 바로 부차를 유약하게 만들고 주의를 분산시키기 위한 미인계로 서시를 택한 것이었다.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서시는 선택을 받고 황궁으로 입궁했고, 구천과 그의 신하들이 서시의 교육을 맡았다. 서시는 3년 간 예절과 노래, 춤을 배웠다. 준비를 마치자 서시는 부차에게 모습을 드러냈고, 부차가 가장 총애하는 여인이 되었다. 
부차가 서시의 아름다움에 푹 빠지자 구천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기다림과 고통, 굴욕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부차를 공격할 때가 온 것이었다. 구천은 마침내 부차를 물리쳤고 월나라는 독립을 되찾았다

2. 왕소군
기원전 50년경 서한 시대에 태어난 왕소군은 귀족 가문에서 자라나 어린 나이에 이미 고전에 정통했고 비파 연주로 청중을 매료시켰다. 재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자라면서 빼어난 미모를 자랑했기 때문에 황궁에 입궁할 궁녀로 뽑힌 일이 놀라운 사건은 아니었다. 황궁 여인으로서 왕소군은 황제의 후궁으로 간택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후궁을 간택할 때 황제는 궁중 여인들의 초상화를 참고로 삼았다. 하지만 당시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들은 탐욕스러웠고 뇌물을 받으면 후궁 후보의 초상화를 예쁘게 꾸미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왕소군이 뇌물을 주지 않자 화가들은 왕소군의 초상화를 흉측하게 그렸다. 빼어난 미모와 재능을 겸비한 왕소군이었으나 후궁으로 간택되지 못했고 결국 먼발치에서 황제를 바라보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한편 황제는 강력한 북방 유목민과 평화 조약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기원전 33년 흉노족의 수장 호한야가 한나라 수도를 방문했다. 흉노 수장은 조공을 바쳤고 황제는 이에 후하게 보답을 했다. 하지만 흉노 수장이 진정 원하던 것은 한나라 공주였다. 황제의 사위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 황제는 한편으로는 금쪽같은 딸과 헤어지기 싫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막강한 힘을 가진 흉노 수장을 기쁘게 하여 유대 관계를 돈독히 하고 싶었다. 그러자 황제의 충직한 신하 한 사람이 묘책을 내놓는다. 궁녀를 공주로 변장시켜 시집보내면 어떠냐는 것이었다. 황제는 동의했고 이때 선택된 궁녀가 바로 왕소군이었다.

황제에게 왕소군은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사람이었다.
신하가 왕소군에게 가서 나라의 평화를 위해 기꺼이 흉노 수장과 결혼해서 북방 초원에서 살 수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 왕소군은 황궁에서의 생활을 생각하며 제안을 거절했다.
하지만 왕소군은 자신의 결정이 모든 사람들에게 미칠 영향력을 생각했다. 성공적으로 혼인조약을 맺으면 전쟁을 끝내고 전장에서의 그 모든 고통과 죽음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왕소군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다잡았고 결국 동의했다.

왕소군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을 때 황제가 그녀를 찾아 왔다. 황제는 충격을 받았다! 그의 앞에는 서 있는 사람은 평범한 궁녀가 아니라 그의 심장을 뛰게 하는 천상의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황제는 그 즉시 사랑에 빠졌고 왕소군을 원했다. 하지만 어떻게 흉노 수장과의 약속을 파기할 수 있겠는가?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황제는 왕소군을 곁에 두고 싶다는 생각을 마음에 묻어야 했다.

반면 흉노 수장은 황제가 선녀처럼 아름다운 여성을 시집보내 준 것에 참으로 기뻤다. 다음날 이른 아침 유목민들은 새 왕비를 모시고 황궁을 떠났다. 왕소군은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황제와 황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왕소군은 유목민의 삶에 적응했고 백성이 사랑하는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왕소군은 단 한 번도 고향을 잊지 않았고, 수장인 남편과 흉노 지도자들에게 평화 관계를 유지할 것을 촉구했다. 왕소군은 이후 평생을 흉노족과 함께 했고 남편이 사망한 뒤에도 왕소군 덕택에 흉노족과 한나라 간에는 무려 60년 간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3. 초선
초선은 서한 시대를 지나 2세기 동한 왕조의 쇠퇴기의 인물이다.
초선은 폭군을 축출하기 위해 계획된 미인계의 주연으로 고전 소설 삼국지연의에 그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야기는 황제가 세상을 떠나고 그의 어린 아들이 왕위에 오르면서 시작된다.

동탁이라는 폭군이 어린 황제를 무시하고 황실을 장악했고, 스스로 황제에 오를 야망을 품고 있었다. 동탁은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자로 감히 그의 앞길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으면 모두 처형했다.
동탁을 도와주고 보호해주는 이가 바로 그의 양아들 여포였다. 여포는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한 장수였다.

제국이 붕괴될 위기에 처하자 황제의 충직한 신하 왕윤은 너무나 괴로웠지만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의 양녀 초선이 그의 고뇌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도울 일이 없는지 여쭈었다. 
왕윤은 순간 외모가 빼어난 양녀 초선을 이용한 미인계와 이간계가 떠올랐다.
 
왕윤은 먼저 여포에게 초선을 시집보내겠다고 약속한 다음 따로 동탁에게도 같은 약속을 하여 부자 사이에 갈등을 만들어낸다. 그런 후 초선이 괴로워하며 여포에게 달려가 자신은 이미 여포의 여자인데 동탁이 결혼을 강요한다고 말한다. 여포는 동탁에게 분노하고 동탁은 여포가 자기 아내를 빼앗으려 한다고 생각했다. 분노에 눈이 먼 여포는 동탁을 죽이고 궁에서 도망쳤다. 그리고 임무는 완수된다.

4. 양귀비
양귀비는 8세기 당나라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었다. 당현종은 양귀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녀를 가장 총애하게 되었다. 황제는 양귀비에게 황실의 작위와 귀중한 보석을 하사하며 그녀의 삶을 화려함으로 채워주었고, 정사를 외면한 채 하루 종일 양귀비와 시간을 보내며 사치에 빠져들었다.

황제가 양귀비와 사랑에 빠져 정사를 소홀히 한 사이 궁궐 밖에서는 문제가 생겨난다. 군부 지도자들이 세력을 규합해 반란을 계획했고 부패한 관리들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양귀비의 친척들을 매수했다.

하지만 황제는 양귀비와의 애정행각에만 골몰할 뿐 국정을 소홀히 했다. 신하들이 반복해서 간언했지만 황제는 이를 무시했다. 마침내 반란군이 궁으로 들어왔을 때 황제와 양귀비는 도망을 가야 했다.  
위험에서 벗어나자 황제의 측근과 호위병들은 앞으로 나아가길 거부했다. 그들은 양귀비 때문에 황제가 정신이 팔려 의무를 저버린 결과 당나라가 망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양귀비가 벌을 받아 자결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당 황실을 호위하지 않겠다고 한다. 달리방도가 없음을 알게 된 황제는 아픈 가슴을 부여안고 결국 동의한다.

<참고자료> https://share.google/WaG99FP2PXPWcjE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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