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軸山歌 - 금수산에서
아~! 으악새 슬피우니 가을인가요?
지나간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가을은 장년(壯年)의 계절인가 보다
호기심과 성장의 세월을 지나 만년에 이른 지금
천지 삼라만상이 모두 나름대로의 결실을 이루었건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마음 한 구석으로 파고듦은
그 열매의 뒷끝을 따라 생명의 불씨가 하나, 둘, 꺼져가게 됨을 슬퍼하기 때문이리라
풍성한 수확의 기쁨도 잠시 뿐
어느 날, 희끗희끗해진 머리카락을 찬바람에 날리며
갑작스레 텅빈 마음으로 고개 돌려 스스로를 되돌아 보고는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지난 세월들이 그립고 아쉬워 몰래 눈물을 흘린다.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이다.
충북 제천의 월악산 국립공원 최북단에 자리잡은 금수산이 오늘의 산행지라 한다.
장거리 산행에는 의례 새벽부터 부산을 떨며 설쳐야만 하는 부담감이 따르지만
장거리 여행이 안겨주는 기대감과 설렘은 어린시절이나 나이 든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는지
새벽부터 괜스레 잠을 설치며 이리 저리 뒤척인다.
아침 7시 45분 지하철 2호선 강변역 앞.
45인승 버스를 한 자리도 남김없이 가득 채운 전세버스가 떠난다.
일상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후련한 해방감에 마음은 벌써 시원한 가을바람을 타고 먼 여행길에 오른다.
생각해 보면 우리 인생도 하나의 긴 여행이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시절의 호기심에서부터 출발하여 성장하고,
성장과 더불어 하나, 둘 시작되는 인생에 대한 도전과 시련,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게되는 유무형(有無形)의 과실(果實)들.
이런 크고 작은 인생의 열매로 우리는 결혼도 하고, 가정과 또 나를 살찌우며 살아간다.
물론 그 와중에는 울고 웃는 인생의 파노라마 또한 없을 수가 없다.
그러다 문득 저 멀리 여정의 종착지가 보일라 치면
예기치 않던 아쉬움과 허전함에 사로잡혀 괜히 울적해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얼마남지 않은 여정을 어떻게 마무리 할 것인가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40여명의 들뜬 마음을 실은 버스는 시원스레 고속도로를 달려
10시 30분경에 금수산 산행기점인 충북 제천시의 상리마을에 도착한다.
이 곳 상리마을은 감나무가 많은 고을인지 며칠전부터 감골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길 양 옆으로는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지만 노랗게 익은 감들이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려있다.
오늘 아침 감골축제를 위한 고사를 지냈는지 제복(祭服)을 입은 마을 어른인 듯 보이는 몇몇 사람들이
길 한쪽 옆에서 돼지머리와 함께 약간의 과일과 떡을 올려 놓고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우리도 떡 한 쪽을 얻어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며 산을 오른다.
쫄깃한 떡이 입안에서 감칠 맛을 내며 '쪽~! 쪽~!' 올라 붙는 듯하다.
눈앞에는 금수산의 부드럽고 시원스런 모습이 높은 가을 하늘 위로 그린 듯 펼쳐져 있다.
금수산의 원래 이름은 백운산이라 하였으나
조선조 중엽 단양군수로 계시던 퇴계선생님이
산 주변을 감싸고 도는 충주호의 아름다움과 산세가 어울려 마치 비단으로 수를 놓은 듯하다고 하여
금수산(錦繡山)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입구에서 잠시 기념찰영을 한 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올라간다.
우리 외에도 몇몇 산행팀이 더 왔는지 등산로에는 낯선 사람들로 가득하다.
알맞게 자란 단풍나무들이 숲터널을 이루는 잘 포장된 길을 따라 10분쯤 올라가면 남근석공원이 나타난다.
금수산은 원래 음기가 강해 이를 상쇄하기 위하여 화강암으로 남근석을 깎아 세워 놓았다고 하는데
어쩐지 너무 인위적인 느낌이 들어 '그냥 산기운 그대로 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남근석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바위너덜지대를 따라 절골로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살바위고개까지는 날카로운 바위들이 온통 길을 덮고 있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다.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는 손에 잡힐 듯 빤히 바라보이는 거리지만
이 정도의 거리에 500여미터의 고도 차이가 난다고 하니
경사로를 오르는 다리 상박근으로 이내 뻐근한 통증이 전해온다.
살바위를 거쳐 금수산의 정상에 서면
하얀 물안개를 머금은 충주호가 크고 작은 산봉우리에 둘러싸여
마치 산기슭을 휘감은 듯 꿈틀대며 이어지고,
그 옆으로는 길게 뻗은 망덕봉(望德峰)의 부드러운 능선과
북쪽으로 펼쳐지는 신선봉의 크고 작은 암봉들도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먼저 온 몇몇 동문님들과 잠시 정상에 오른 기념으로 사진 한 장 찍은 후 부랴부랴 산을 내려온다.
많은 동문들이 정상을 오르지 않고 살바위에서 곧장 망덕봉으로 향했기에 우리만 뒤처질 수 없다.
잰걸음으로 선두를 따라 잡으려 하였으나 약간의 휴식까지 가진 터라 쉬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늘등을 따라가는 발걸음마다에는 폭삭거리며 뽀얀 흙먼지가 날린다.
가을이라고는 하지만 윤달이 섞인 탓인지, 아니면 아직 계절이 무르익지 않은 탓인지
여전히 여름은 산허리에 걸려 줄줄 땀을 걷어내고 있다.
금년에는 가뭄과 더위로 단풍의 색이 곱지 않을거라고 하더니
여름인지 가을인지도 모른 채 낙엽은 이미 말라 떨어져 땅바닥을 뒹굴건만
울긋불긋 온산을 물들여야 할 단풍의 아름다움은 쉬이 찾아 볼 수가 없다.
얼음골재에 둘러앉아 모두들 점심을 꺼내든다.
찬바람이 들면 뒹구는 낙엽을 깔고 따뜻한 햇살을 벗하여
옹기종기 둘러앉아 아기자기하게 웃음꽃을 피우며 식사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안성맞춤의 자리지만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이 채 가시지 않아 약간의 그늘이 그립다.
우뚝 솟은 망덕봉이 그림자를 드리우고
게으른 여름철 늦바람이 느릿느릿 우리 곁을 지나간다.
여러 동문님들과 저마다 싸온 이런 저런 음식들을 서로 나눠먹은 후
제법 묵직해진 배를 안고 망덕봉을 오른다.
뱃속에선 연방 '씩~! 씩~!'거리며 출력을 올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긴 시동을 끈지도 한시간쯤 흘렀으니 제대로 힘을 받으려면 억지로라도 마력수를 높일 수 밖에.......
망덕봉을 넘어서면 급경사의 바윗길이 나오고 곧 이어 소용아릉(小龍牙陵)에 들어선다.
40여미터 높이의 암벽으로 시작하는 소용아릉은
설악산의 용아장릉과 흡사하나 그 규모가 다소 작다고 하여
이 곳 사람들은 이 능선을 소용아릉이라 부른다고 한다.
좌우로는 깊은 계곡을 이루며 울퉁불퉁 크고 작은 바위들이 연이어지는 소용아릉은
북으로는 신선봉이 펼쳐내는 높고 긴 산줄기와
남으로는 충주호가 그려내는 희미한 물안개가 어울리고
능선 곳곳에 드러난 깊은 단애(斷崖)들은 (단애 :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야말로 한 폭의 멋진 동양화를 그려낸다.
덤으로, 탁 트인 주변의 풍광과 시원한 바람,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만들어 낸 능선을 오르내리는 짜릿한 스릴과 아기자기함은
일찌기 다른 산에서 맛보지 못한 색다른 그 무엇이랄까?
한마디로 '등산하는 맛이 난다'는 말 외에 또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
산부인과 바위를 중심으로 한 소용아릉을 지나 고사리봉삼거리에 이르러 고무실계곡 방향으로 들어서면
산자락에 넓게 펼쳐진 억새평원의 아름다움 또한 일품이다.
멀리서 한들한들 바람에 흔들리는 수많은 억새꽃 무리를 바라보면
하얀 비단옷을 걸친 수많은 여인들이 너울너울 군무(群舞)를 추며 노래하는 듯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한 포기 한 포기를 살펴보면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부르듯 다정다감하다.
분명 가을은 이미 우리 옆에 와 있고, 또 무르익고 있음이랴 !
억새평원을 지나 마을어귀에 들어서니 저만큼 떨어진 곳에 버스가 서있다.
'이젠 오늘 산행도 끝났구나 !'
뿌듯한 만족감과 아쉬움을 품에 안고
약속된 식당에 모여 앉아 매운탕으로 저녁 겸 하산주를 나눈다.
연중 가장 감성적인 계절인 가을 !
결실의 계절이며, 또한 장년의 계절이기도 한 이 가을에
오늘 우리 지축 가족들이 이 처럼 아름다운 금수산의 한 자락에 모여
한껏 소리 높여 함께 합창하였음은
긴 우리들의 인생여정을 더욱 살찌우는
또 하나의 좋은 열매가 되었으리라............
<상리마을 금수산 기점에서>
<상리마을 기점의 포장도로를 올라가며>
<남근석공원의 남근석 바위>
<단풍이 물든 살바위고개 아랫기슭>
<살바위>
<금수산 정상에서>
<정상에서 바라보는 망덕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살바위>
<얼을골재에서 점심을>
<망덕봉을 넘어 급경사의 바윗길을 내려가며>
<망덕봉을 넘어 급경사의 바윗길을 내려가며>
<40미터 높이의 소용아릉 암벽길>
<소용아릉에 올라서서>
<소용아릉에 올라서서>
<소용아릉 단애>
<소용아릉에서>
<소용아릉에서>
<소용아릉에서>
<소용아릉에서>
<소용아릉에서 >
<소용아릉에서>
<소용아릉 산부인과 바위 앞에서 - 뒤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망덕봉이다.>
<소용아릉에서 - 뒤로는 천길 낭떠러지>
<소용아릉에서>
<금수산 소용아릉의 선녀들?>
<소용아릉에 핀 꽃과 나비 2쌍 ?>
<소용아릉에서 - 꽃은 없고 벌떼들만 셋이서 ? .... 최선배님 죄송...........>
<하산길의 억새평원에서>
<하산길의 억새평원에서>
<등산코스>
상리마을 - 남근석공원 - 샘터 - 살바위고개 - 금수산 정상 - 얼음골재 - 망덕봉 - 소용아릉
- 산부인과바위 - 고사리봉 삼거리 - 고두실계곡 억새평원 - 슬모기마을(산행종점)
<참여하신 분들>
9회 : 김동연님, 김무남님, 안진수님, 김대성님, 허정님
10회 : 박웅사님, 배기필님, 최용훈님
12회 : 김광웅님
13회 : 김정묵님 내외분
14회 : 박태수님
15회 : 박창욱님 내외분
16회 : 박성흠님
17회 : 김경수님, 김외석님, 잉영섭님, 정희국님, 한석수님
18회 : 강진희님
21회 : 김동관님, 김상문님 내외분, 박두호님, 노민규님
22회 : 이윤석님 내외분, 우오현님 내외분, 김동성님, 예창기님
23회 : 오광남님 내외분
27회 : 송두진님 내외분, 왕종수님 내외분
29회 : 이용영님, 제재용님 내외분
30회 : 양정권님 내외분
35회 : 서종호님
총 인원 : 44명
2006. 10. 15 금수산을 다녀와서
오호(五湖) 우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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