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軸山歌 - 청량산에서(2006. 4. 16)
<청량산 삼거리에서>
인생 조명
- 오호 -
이젠 날개를 접고
가만히 내려앉아야지
끝없이 높은 하늘 한껏 날아오르기엔
나의 날개짓이 너무 여리구나
눈 아래 펼쳐진 광활한 대지도
내가 품어 안기엔 너무 벅차구나
4월의 바람에 나풀대는
여인의 치맛자락처럼
꿈과 현실 사이를 오가며 애태웠던
수많은 상념들 !
이젠 모두 깃 속에 감춘 채
가만히 내려앉아야지
나는 나를 바라본다
내 속의 내가
나 아닌 나를 찾아
내 밖으로 조용히 밀어낼 수 있도록
무던히도 몸부림치며 애태웠던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나 아닌 내가
내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세월들이.....
이젠 모두 깃 속에 감춘 채
내가 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한 낱 풀뿌리가 되고
한 줌 흙먼지가 되어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수 있음을
기뻐해야지.......
7시 10분
찬바람에 선잠을 날리며 버스는 강변역을 떠난다.
오랜만의 원거리 산행이라 약간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혹 시간에 늦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새벽부터 부산을 떤다.
집사람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아는지라 여느 때완 달리 손놀림이 바쁘다.
아마도 우리 지축 산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이런 새벽을 맞았기에
모두가 만족스런 정시 출발이 가능하였으리라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4시간이란 긴여행 끝에
버스는 경북 봉화군 명호면에 자리한 오늘의 산행지 청량산 입구에 들어선다.
오늘 산행코스는 청량산 등산코스로는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진
입석 기점에서 부터 시작하여
외청량사로 불리기도 하는 응진전,
신라의 명필 김생이 서도를 갈고 닦던 곳이라고 하는 김생굴,
그리고 청량사의 운치를 더욱 아름답게 조명하는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을 거쳐
뒤실고개를 전환점으로 다시 청량사로 내려와
삼거리에서 산행을 마치기로 되어 있다.
<입석 산행기점을 오르는 동문들의 모습>
따사로운 햇살을 등에 지고
긴 행렬을 이루며 산을 오르는 우리 지축 산가족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장관이다.
층층 절벽을 이루며 휘감아 도는 산 중턱 곳곳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후련해지는 탁 트인 조망과
그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은
벌써 봄을 �아 내고 여름을 맞이하기라도 하려는 듯
축축하게 땀에 젓은 가슴 속을 파고 든다.
<응진전>
산허리를 돌아 두어 구비 휘감으니
운치있게 솟아 오른 회흑색의 암봉 아래 작은 암자 하나 눈에 띈다.
한 때 원효대사가 머물렀다고 전해지는 응진전이다.
비록 작은 암자이긴 하나
한 시대의 사표가 되신 명승의 불도량(佛道場)이라 하니 괜스레 감개가 무량하다
<김생굴>
잠시 암자 옆 낭떠러지 한 켠에 서서 거친 숨을 돌린다.
4월은 봄바람을 타고 '살랑~살랑~' 여인의 치맛자락을 흔들며
봄인 듯, 겨울인 듯 그렇게 다가와
일시에 여름으로 내달을 심산인가 보다
산 아래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꽤나 차갑다 싶더니
김생굴 앞에 이르러 때 아닌 고드름을 보게 된다.
아마도 바위 위에서 흘러내리는 물방울이 찬바람에 날리면서
나뭇가지 끝에 얼어 붙은 탓이리라
생각지도 않던 고드름을 보고 모두 감탄하며
"봄철에도 고드름이 달리는 이 물방울을 맞으면 다시 젊어진다지?"
"머리에 맞으면 머리털이 다시 검어진다지?"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특이한 자연 현상을 보고
마치 무슨 색다른 생명력이라도 얻게 될 것 같은 농을 건네는 것은
그냥 재미로만 웃고 넘길 단순한 농을 지나
인생의 고개를 하나 둘 넘기면서
시들어 가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인지도 모른다.
<자소봉>
<자소봉에서 - 15회 박창욱님 내외분>
김생굴을 지나 약간 무거워진 다리를 끌며 급경사를 오른다.
육육봉(청량산 12봉을 퇴계 선생이 이렇게 표현하였음) 아름다운 꽃봉오리
그 봉우리의 중심에 자리잡은 자소봉이다
심호흡 토해내며
검은 듯, 흰 듯
색깔마저 은근한 봉우리의 한 켠에 서서
멀리 산 아래를 내려다 본다.
크고 작은 산 사이로 꾸불꾸불 이어지는 길을 따라
여기 저기 흩어져 드문드문 무리를 이룬 초라한 가옥들이 애처롭다.
<탁필봉 앞에서>
교통이 불편하여 경북에서도 손꼽히는 오지에 속하는 봉화마을!
한 번 발을 들여놓으면 영영 빠져나가지 못한 채
한 평생 촌부로 지내야만 할 것 같은 산골마을의 답답함이
고즈늑한 평화 속에 가리워져 있는 것일까?
숨가쁘게 돌아가는 도회지의 삶에 대한 염증을 한층 자극하며
"내 속에 묻혀 살라" 손짓하며 유혹한다.
<연적봉 위에서 본 자소봉과 탁필봉>
마치 옛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청량산은
깎아지른 암봉들을 배경으로
원효, 의상과 같은 고승들이 구도를 위해 수도하던 불도량이었으며
최치원, 김생, 퇴계 같은 대학자들이 학문의 길을 열기 위해
절차탁마(切蹉琢磨) 애태우며 정진하던 학업의 도장이기도 하였다고 한다.
맹모삼천지교라더니 !
과연, 훌륭한 선비들과 명승들을 배출하고도 남을 만한
그 수려한 풍광과 산계는 고아하다 못해 높은 기품마저 풍겨난다.
<장인봉 - 의상봉이라고도 함>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을 거쳐 뒤실고개로 내려서며
건너편에 서 있는 장인봉(의상봉이라고도 함)을 바라본다.
봉우리의 생김새는 지나온 여느 봉우리에 비해 다소 품격이 떨어진 듯 하나
그래도 청량산의 제일봉(第一峰)이라 하니 한 번쯤 가봄직도 하다만은
지금은 '출입금지'란 팻말이 붙어 있어
할 수 없이 뒤실고개에서 청량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뒤실고개 아래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는 동문들>
시간도 꽤나 되고 뱃속도 고단하니
뭔가로 채울 때가 되었나 보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남쪽 기슭에 자리를 잡고 점심을 펼쳐 든다.
오손도손, 옹기종기, 희희낙낙.......
역시 먹는 일보다 더 즐거운 건 없나 보다.
우리도 한 쪽 옆 빈자리를 차지하여 조촐하나마 도시락을 꺼내든다.
논밭일로 더러워진 옷자락을 '툴! 툴!' 털어내며 '허허~!' 웃는 촌부처럼
파부침 지져내며 '희희낙낙' 수다떠는 아낙처럼
그렇게 둘러앉아 '하하~! 호호~!' 소찬을 즐긴다.
'어허~! 행복이란 게 이런 거지, 별 것이 있다더냐?'
<청량사에서 본 연화봉>
자리를 정리하고 청량사로 내려선다.
청량사는 청량산 육육봉이 연꽃처럼 펼쳐진 꽃의 수술에 해당하는 자리라
풍수지리학상 길지 중의 길지로 꼽힌다고 한다.
청량사 경내에서 바라보면
위로는 자소봉, 탁필봉, 연적봉이,
좌로는 연화봉과 장인봉이,
우로는 금탑봉과 경일봉이,
남으로는 축융봉이,
마치 청량사를 감싸듯 둘러싸고 있으며,
그 봉우리 하나 하나 마다에는
높은 경지의 학문을 이룬 선비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조용한 품격이 은은히 풍겨난다.
<청량사 유리보전 앞에서>
<유리보전 앞에서 - 22회 이윤석님, 21회 김동관님 부인, 9회 김동연님>
청량사 본당격인 유리보전(琉璃寶殿)의 현판 글씨 또한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 곳으로 들어왔던 공민왕이 직접 쓴 친필 휘호라고 하니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주말 대하드라마 '신돈'을 생각하며
한 세기를 풍미했던 영웅호걸들의 파란만장한 일생이 다시 한번 의미있게 다가오는 듯 하다.
<청량사 경내의 석탑과 금탑봉?>
지금은 교통이 불편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내몰린 채
파란 많은 세상과 영욕(榮辱)의 세월을 조용히 묻어두고
한 낱 문화유적이나 관광지로만 그 명맥을 이어오는 청량산 !
<부처님 오신 날을 준비하고 있는 청량사 주변의 모습>
세월은 그렇게.......
한 나라를 호령하던 영웅호걸들도,
민족의 시대 정신을 이어온 현자(賢者)들도,
모두 하나, 둘, 묻어버린 채
지금은 심심산골,
그저 산 좋고 물 좋은 금수강산으로만 남겨두었더란 말이냐?
<하산길에서 본 금탑봉?>
삼거리로 향하는 하산길을 금탑봉이 배웅한다.
가슴 속에 한 가닥 아쉬움을 남긴 채
가만히 스스로를 되돌아 본다.
무던히도 몸부림치며 애태웠던 지난 세월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모든 게 다 부질없는 것을!
나 아닌 내가
내가 되기 위해 몸부림쳤던 그 많은 세월들 !
이젠 모두 접어두고
내가 처음 올 때 그러했던 것처럼
언젠가는 다시
한 낱 풀뿌리가 되고
한 줌 흙먼지가 되어
그 모습 그대로 돌아갈 수 있음을
기뻐해야지........
<등산코스>
입석 - 응진전 - 김생굴 - 자소봉 - 탁필봉 - 연적봉 - 뒤실고개 - 청량사 - 삼거리(모정)
2006. 4. 16 청량산을 다녀와서
오호(五湖) 우오현
'등산 > 지축산악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축산가 - 도봉산에서(2006. 8. 20) (0) | 2006.08.21 |
---|---|
지축산가 - 수락산에서(2006.06.18) (0) | 2006.06.19 |
지축산가 - 대둔산에서(2006. 5. 21) (0) | 2006.05.22 |
지축산가 - 불곡산 시산제(2006. 3. 19) (0) | 2006.03.19 |
지축산가 - 호암산 시산제(2005. 4. 17) (0) | 2005.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