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지방산행

월악산(2005.12.10)

OHO 2005. 12. 10. 21:27

월악산(2005. 12. 10)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집사람은 큰딸의 자치방에서 하루 쯤 묵었다 온다고 한다.

다음주부터 겨울 휴강기간이라 큰딸의 짐도 챙겨 올 겸 천안으로 내려간 것이다.

대학 1년생인 딸아이는 학교 근처의 원룸에서 혼자 자치생활을 하고 있다.

미련둥이 철부지가 아무 탈없이 1년 동안 혼자서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늦은 밤에 혼자  인터넷을 뒤지며 여기저기 확인해 본다.

전부터 가고싶었던 월악산 산행팀이 어디 올라와 있는가 해서........

다행히 한백산악회란 등산팀의 월악산 영봉 산행계획이 올라와 있었다.

 

이튿날 새벽.

천호지하철역에서 탄 산악회 소속 버스는 새벽의 어둠을 뚫고 달린다.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차례로 거쳐 괴산 톨게이트를 빠져나간다.

월악산 입구 한 귀퉁이의 고갯마루인가?

구비구비 이어지는 산등성이 사이로 버스는 이리 휘고 저리 돌며 달려간다.

창밖으로 조용하고 아늑한 충주호가 펼쳐졌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더니

버스는 마침내 월악산국립공원 내의 덕주휴게소 앞에 멈춘다.

오늘 산행계획은 덕주휴게소에서 덕주골을 따라 송계삼거리를 거쳐 영봉을 오른 다음,

다시 송계삼거리로 내려와 동창교매표소가 있는 송계리로 하산하는 것이다.

 

<덕주사 마애불>

 

덕주휴게소에 세워진 안내판 앞에서 어정거리는 동안 일행들은 벌써 저 멀리 가버렸다.

뒤를 놓칠세라 황급히 따라 붙는다.

두어 걸음 더 올라가서 계곡 쪽을 보니 덕주골의 맑은 물이 하얀 눈사이로 얼굴을 내민다.

겨울철이라 사람들의 떼를 타지 않은 탓일까?

이맘 때면 어느 산이나 할 것 없이 계곡의 물이 유독 맑고 깨끗해 보인다.

더구나 깨어진 얼음이나 눈 사이로 흐르는 물은 더욱 그러하다.

 

동문을 거쳐 덕주사에 이른다.

더 넓은 절 터에는 대웅보전만이 홀로 덩그러니 서 있을 뿐 황량하기 그지 없다.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된 덕주사의 원래 이름은 월형산(月兄山) 월악사(月岳寺)라고 한다.

신라가 멸망하자 경순왕의 맏딸이자 마의태자의 누이동생인 덕주공주는 여기 덕주골로 피신하여 

높이 15m의 암벽에 마애미륵불을 새겨 놓고 망국의 한을 달래며 신라의 재건을 염원하였다고 한다.

덕주공주가 세상을 떠나자 월형산은 월악산으로, 월악사는 덕주사로 고쳐 부르고,

골짜기 이름도 덕주골로 명명하였다고 한다.

덕주사는 마애불이 있는 상덕주사와 대웅전이 있는 하덕주사로 나뉘어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고 없다.

 

<월악산의 봉우리들>

 

마애불에 합장하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추운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이 쪽 능선은 남쪽이라 그런지 햇살이 꽤나 좋은 편이다.

자켓 사이로 땀이 촉촉하게 배이고

이마에 맺힌 땀방울은 모자창 끝을 타고 '뚝~! 뚝~! ' 흘러내린다.

'이게 겨울이냐? 여름이냐?'

쉴새없이 쏟아지는 땀 때문에 자켓도 축축하고 모자도 흥건히 젖었다.

'몸도 더운데 왠 계단은 이리도 많을까?'

월악산은 산봉우리 전체가 계단으로 연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계단의 연속이다.

철제계단, 목재계단, 그리고 돌계단 등등.......

월악산은 산세가 험한 악산(惡山)이다.

만약 이런 계단들을 설치해 두지 않았다면 크고 작은 봉우리와 암벽에 막혀 

우리 같은 평범한 산꾼들은 이 산을 오르기가 어려울 것이다.

계단을 설치하여 이런 험한 산을 누구나 쉽게 올라갈 수 있도록 하였다고 생각하면 잘 한 일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계단 때문에 산의 진면목이 모두 훼손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자연보존과 관광자원의 개발, 이 두가지를 함께 살려나갈 적절한 방안은 없었을까.......?

 

<월악산 영봉>

 

덕주골의 사면을 벗어나 월악산의 주능선으로 들어선다.

멀리 능선 건너편에 회백색의 거대한 암봉이 눈에 들어온다.

영봉(靈峰)이다.

타오르다 꺼져버린 불꽃처럼

잿빛 암벽 위로 혓바닥을 날름대는 불꽃 모양의 거대한 암봉은

활활 타오르고 싶은 욕망을 억제하고 가만히 몸을 웅크린 채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

 

아직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지는데

능선 위에 내려앉은 하얀눈은 나의 그런 마음엔 아랑곶없이 바람따라 흩날린다.

능선길을 오르락 내리락 쉼없이 걷다보면 지나온 발자취는 아련한 그리움이 되고

얼굴을 스쳐가는 바람 속엔 차가운 연민으로 가득찬다.

하늘 가른 긴 능선은 끝간 데 없고

길게 내려뻗은 산사면은 보기만 해도 시원스럽다.

 

<영봉에서>

 

<영봉에서>

 

<영봉에서>

 

영봉 앞에 서서 봉우리를 쳐다보면 절벽 위에 우뚝 솟은 거대한 암봉의 모습은 자못 위압적이다.

바로 눈앞에 있건만 그 위로 올라가자면

영봉의 뒤를 돌아 수많은 계단을 힘겹게 밟아 올라야만 하는, 생각과는 달리 긴 길이다.

한없는 절벽 저 아래로 부터 불쑥 솟아오른 영봉에 올라서면

불현듯 '빙~' 하는 현기증이 일어나고,

눈앞에는 무엇하나 막힘 없는 텅빈 공간이 된다.

아래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봉우리 위는 다소 협소하고

철제구조물도 많이 설치되어 자연미는 떨어지지만

천지간에 홀로 우뚝 솟은 듯한 영봉에 올라서서

나도 몰래 절로 탄성을 자아내며

심호흡 한번으로 대자연을 품어본다.

 

<중봉>

 

월악산 영봉은 국사봉이라고도 하나

예로부터 산의 형상이 신령스럽다고 하여 '영봉(靈峰)'으로 불렀다고 한다.

영봉(1,097m)은 암벽 높이 150m에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산세가 매우 가파르고 험준하다

영봉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뽀죽하게 솟아오른 중봉의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수산리에서 올라오게 되면 하봉, 중봉을 거쳐 영봉을 차례로 오를 수 있지만

이 달 말까지는 출입통제를 하고 있다고 한다.

 

<하산후 동창교 쪽에서 본 영봉, 중봉, 하봉의 모습>

 

좁은 영봉 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복잡하고 바람도 차가워서

정상에 오른 기념만을 남긴 채 서둘러 다시 내려온다.

보덕암삼거리와 신륵사삼거리를 거쳐 다시 송계삼거리에 도착한 다음 동창교로 내려온다.

경사가 가파르고 돌계단이 많은 이 길로 내려가면 무척 단조롭고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하산을 끝내고

동창교 주변에서 월악산을 바라보니 하봉, 중봉, 영봉이 삼형제인 양 닮아 보인다.

월악산!

크고 작은 바위 봉우리들이 줄줄이 얽힌 대단히 험준하면서도 매력적인 산이건만

등산객들을 위한 지나친 개발로 인해 원래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한동안 가시질 않는다.

 

<월악산 등산지도>

 

 

2005. 12. 10  월악산을 다녀와서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