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수도권산행

운악산(2005.11.26)

OHO 2005. 11. 26. 21:11

경기의 금강 운악산을 찾아서(2005. 11. 26)

 
운악산(雲岳山) 만경대(萬景臺)는 금강산(金剛山)을 노래하고
현등사(懸燈寺) 범종(梵鐘)소리 솔바람에 날리는데
백년소(百年沼) 무우폭포(舞雩瀑布)에 푸른안개 오르네

 

운악산의 절경이 금강산과 비교할 만큼 뛰어나다는 의미가 담긴 이 시는 운악산 입구의 시비(詩碑)에 새겨진 글이다.

 

 운악산(해발 936m)은 경기 5악(화악산, 관악산, 감악산, 송악산, 운악산)중 가장 수려한 산이다. 현등산이라고도 불리는 운악산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른 산'이란 뜻을 가진 그 이름만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기암괴봉으로 절경을 이루는 아름다운 산이다. 산중턱에는 신라 법흥왕 때 창건한 절인 현등사가 있고, 동쪽 능선에는 만경대, 미륵바위, 눈썹바위, 병풍바위 등 크고 작은 암봉들이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고, 산자락에는 무지개폭포, 무우(舞雩)폭포, 백년폭포 등 폭포를 품은 계곡이 있어 여름철 산행지로도 좋지만, 가을단풍이 특히 장관이고, 봄이면 산목련과 진달래가 꽃바다를 이루기도 한다. 정상부의 만경대에 올라서면 남쪽능선 아래로는 현리가, 서쪽으로는 포천의 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북으로는 멀리 명지산과 화악산이 가물가물 시야에 들어온다.

 

 너무 늦게 출발하였나 보다. 하판리의 운악산 입구에 도착하니 벌써 12시다. 멀리 운악산의 봉우리가 안개에 싸인 듯 흐릿하게 떠 있다. 손두부와 도토리묵을 안주로 막걸리를 파는 가게들 사이를 지나 매표소를 통과한다. 「운악산 현등사」라고 새겨진 현판이 달린, 길 한쪽 옆에 세워져있어서 있으나 마나 한 일주문을 통과하여 잘 포장된 넓은 대로를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첫 번째 이정표가 나온다. 계속 가면 현등사로 올라가게 되기 때문에 이정표를 따라 동쪽 만경능선으로 들어선다.

 

 요 며칠간은 이상하리만큼 따뜻하다. 지난주 수락산 산행 때는 뜻밖의 추위를 만나 다소 어려움이 있었기에 오늘은 오랜만에 겨울 티셔츠를 입고 나왔더니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날씨 탓인지 자꾸만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집사람도 그러한가 보다.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우리를 앞질러간다. 뒤에서 쳐다보니 그들 역시 발걸음이 가벼워 보이지는 않는다. 다소 가파르게 이어지는 만경능선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한 무더기의 바위더미가 앞을 가로 막는다. 눈썹바위다. 멀리서 바라보면 사람의 눈썹처럼 생겼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눈썹바위 한 귀퉁이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땀을 식혀본다.

 

 작년겨울 고교동기들과 이 길을 오르던 일이 생각난다. 모두가 부부 동반하여 눈 덮인 산길을 희희낙낙 즐겁게 오르던 기억이........ 큰 바위 두어 개를 오르면 운악산의 정상이라고 해도 될 만한 만경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그 옆으로는 길게 이어지는 운악능선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다. 운악산의 절경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계곡 저 건너편 운악능선의 삐죽삐죽 솟은 봉우리들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옛 화공들의 그림 속에서나 나올 법한 신선들이 사는 그런 그림으로....... 작년 겨울 이 능선의 작은 바위 위에서 저 그림들을 배경으로 고교동기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던 기억이 새롭다. 즐거웠던 한 때의 추억이다.

 

 계곡 아래로부터 시원한 한 줄기의 바람이 불어온다 싶더니 햇볕은 어느새 구름 속으로 숨어들고 주변이 어둑해지면서 조금씩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산 위에서 하산하는 한 무리의 산행객들이 비가 올지 모르니 빨리 내려가자고 한다. 더운 날씨가 갑자기 추운 날씨로 바뀌었다. '오늘같이 추운 날 비가 오면 큰일인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요즘 같은 가을에 비가 오면 얼마나........' 라고 생각하며, 추위에 언 코를 훌쩍거리면서 올라간다. 산 중에서 변덕스런 날씨를 만난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길은 이미 산중턱을 넘어 하나, 둘, 봉우리가 가까워진다. 눈앞에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바위 하나가 서있다. 미륵바위다. 먼 훗날 천(天), 지(地), 인(人), 삼계(三界)의 법이 무너져 혼돈의 말세가 도래할 때 중생을 구원하게 될 미래불(未來佛)이라는 미륵불(彌勒佛)! 자비와 관용으로 아수라의 지옥에 빠진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조용히 때를 기다리며 여기 이 산 중에 묻혀 먼 훗날을 위한 공덕을 쌓고 있는 것일까? 미륵바위는 그 이름만큼이나 신령스럽고 은은하게 태고의 신비를 뿜어낸다.

 

 미륵바위 옆을 지나 작은 산봉우리의 중턱에 올라서서 뒤돌아보면, 미륵은 어느새 텅 빈 허공을 응시하며 무념(無念)의 세계로 빠져든 한 도인(道人)의 모습으로 바뀐다. 한없는 세월의 풍상(風霜) 속에 온몸을 내던지고 오늘도 절차탁마(切磋琢磨)하며 자비의 세계를 열고자 애를 쓰고 있는 것일까? 무아지경에 빠진 듯한 그 모습에 취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미륵바위 뒤쪽 깊은 골 너머에는 병풍바위가 거창하게 서 있다. 깎아지른 듯한 수직의 암벽을 따라 허연 몸을 드러내고 능선을 따라 높고 길게 뻗어 오른 병풍바위는 마치 거칠게 몰아치는 차가운 북풍을 가로막아 미륵을 감싸 보호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그렇게 가파른 바윗길을 오르노라면 깊은 골 저 아래로부터 용솟음한 봉우리 하나가 있고, 그 한쪽 수직의 암벽에는 긴 세월의 흔적을 남기며 검게 녹슨 20여 미터의 철사다리가 앙상한 몰골만 남긴 채 서있다. 벼랑 끝 바위 위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철제 다리를 건너 두어 바퀴 돌아서면 어느 듯 만경대에 올라선다.

 

세찬 바람 불어오는 만경대에 올라서면
저 아래 능선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은 그리움처럼 아련하고
그 사이 사이마다 채색된 푸른 솔은 추억처럼 그윽하다.
머리 위론 끝없이 높고 푸른 하늘
발아랜 그윽한 산봉우리, 울울창창 푸른 솔
나도 한 줄기 바람 되어 저 산 속을 헤메이고
나도 한 개 산봉우리 되어 저 산 속에 머무른다.

 

 날씨 탓일까? 만경대에 오른 사람들은 바람을 피해 능선 바위틈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간식을 나눠먹고 있다. 약간의 아쉬움은 남았으나 바람이 너무 거칠고 차가워 만경대를 뒤로 한 채 운악산의 정상을 향한다. 만경대에서는 지척의 거리다. 다소 평지를 이루고 있는 운악산의 정상에도 역시 찬바람이 거칠게 불어온다. 멀리 광덕산에서 줄기를 뻗어 백운산, 국망봉, 청계산을 거쳐 이 곳 한북정맥의 한 자락에 조용히 자리 잡은 운악산! 그 산세의 아름다움이 과연 금강이라! 봉우리마다 그윽한 향기 가득하구나 !

 

 바람을 피해 능선 아래로 내려온다. 움푹 팬 골 아래에는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다. 낙엽 사이에 자리를 잡고 두어 팀의 등산객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우리도 그 중 한 자리를 잡아 배낭을 풀어 헤친다. 바람은 피했으나 날씨는 여전히 차갑다. 옆에 있는 나무둥지에서 박새 한 마리가 얼굴을 내밀고 먹이를 찾고 있다.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도 전혀 무서워하는 기색이 없다. 생고구마 한 조각을 박새에게 던져주고 우리도 허기진 배를 채운다. 벌써 오후 2시가 넘었다. 컵라면과 식은 밥 한 숟가락으로 점심을 때우고 느긋한 마음으로 운악능선을 따라 절고개로 향한다. 지나온 만경능선을 바라보는 것 또한 적지 않은 즐거움이다. 하늘과 경계한 능선의 아름다운 굴곡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긴다. 능선 아래로부터 차가운 북풍이 불어온다.

 

 절고개에 이르면 이젠 산행도 하산길로 접어든다.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라 가다보면 약간의 바위 너덜지대가 나오고, 곧이어 코끼리바위까지 내려오게 되면 대략 산길이 끝나면서 눈앞에는 현등사가 나타난다. 현등사는 신라 23대 법흥왕 때 인도에서 온 스님 마라아미를 위해 창건한 절이라고 하는데, 그 후 수백 년 동안 폐허로 버려져 오다가 고려 21대 희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산 중턱에서 희미한 불빛이 비쳐 찾아가 보니 석대 위에 옥등이 하나 달려있어 그 곳에 다시 절을 중건하고 절의 이름을 현등사(懸燈寺)라 하였다고 한다.

 

 현등사 아래로 난 탄탄대로를 따라 내려가면 길 아래 계곡에는 구한말의 우국대신(憂國大臣)이신 민영환선생님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민영환바위가 있고, 곧 이어 무우폭포(舞雩瀑布), 백년폭포(百年瀑布) 등이 차례로 나오지만 굽이굽이 휘감아 돌며 떨어지는 물길과는 달리 계곡엔 물이 말라 아쉬움이 가득하다. '졸~졸~' 흐르는 계곡 언저리에는 떨어져 퇴색한 낙엽만이 수북하고 물안개 그윽하던 무우폭포도, 백년을 변치 않고 흐른다는 백년폭포도, 한 가닥 희미한 물줄기만 남긴 채 지나간 세월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운악산 입구의 운악산 시비>

 

 

<만경능선에서>

 

 

<만경대를 배경으로>

 

 

<만경대를 배경으로>

 

 

<미륵바위>

 

 

<산위에서 본 미륵바위>

 

 

<병풍바위>

 

 

<운악산 암봉>

 

 

<만경대에서>

 

 

<운악산 정상에서>

 

<남근바위>

 

 

<운악산 등산 개념도>

 

<등산코스>

매표소 - 방향표지판1번 - 눈썹바위 - 미륵바위 - 병풍바위 - 철사다리 - 만경대 - 남근석바위 - 절고개 - 코끼리바위 - 현등사 - 민영환 바위 - 무우폭포 - 백년폭포 - 하산

 

<운악산 등산지도>

 

 

2005. 11. 26   운악산을 다녀와서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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