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李凝幽居(제이응유거)/賈島(가도)
閒居少隣幷(한거소린병)
草徑入荒園(초경입황원)
鳥宿池邊樹(조숙지변수)
僧推月下門(승퇴월하문)
過橋分野色(과교분야색)
移石動雲根(이석동운근)
暫去還來此(잠거환래차)
幽期不負言(유기불부언)
<이응의 고요한 거처를 제목으로 하다>
한적하게 사는지라 이웃도 적은데
풀길은 황량한 정원으로 들었다.
새는 연못가 나무에 깃들고
스님은 달빛 아래 문을 민다.
들빛은 다리를 지나 나뉘고
구름은 바위를 옮길 듯 움직인다.
잠시 갔다가 다시 여기에 온 것은
그윽한 기약의 말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네
<감상>
이 시는 시 자체 보다는 퇴고(推敲, 시문을 여러 번 생각하여 고침)라는 말의 유래가 된 시로 더 유명하다
당나라 때의 시인 가도는 일찌기 불문에 들어갔다가 환속(還俗)한 인물인데, 당대의 대문장가인 한유와의 사귐을 계기로 시작(詩作)에 전념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가도가 과거를 보기 위해 장안으로 가다가 문득 시상이 떠올라 <이응의 유거에 제함>이라는 시를 짓게 되었다.
인가가 드물어 한가한 집(閑居少隣竝 한거소린병)
잡초 덮힌 오솔길은 황량한 정원과 통하네(草徑入荒園 초경입황원)
새는 연못가 나무에서 잠자고(鳥宿池邊樹 조숙지변수)
중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린다(僧敲月下門 승고월하문)
그런데 가도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을 '민다(推)'고 해야 좋을지 '두드린다(敲)' 해야 좋을지 몰라 갈등하기 시작했다.
가도는 어느 것이 좋을 지 고민하며 가다가 그만 고관의 행차와 부딪치고 말았다.
그 고관은 바로 당대의 대문장가인 한유였다.
당시에는 고관이 가마를 타고 가면 의례 길가에 무릎 꿇어 엎드리고 예를 표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가도는 시의 문구에 몰두하여 그만 그런 예를 표시하지 않아 무례하다는 이유로 한유 앞에 끌려왔고, 한유가 그 까닭을 물으니 가도는 자초지종을 고했다.
그러자 한유는 시를 보여달라고 하여 잠시 보고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내 생각엔 '밀 퇴(推)' 보다는 '두드릴 고(敲)'가 좋겠네." 하고 조언하였고,
이후 이 시의 僧推月下門(승퇴월하문)의 구절은 僧
推月下門 으로 쓰이기도 하고, 僧敲月下門 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까닭으로 한유와 가도는 친한 시우(詩友)가 되었고, 또한 시나 문장을 여러 번 생각하여 다듬고 고치는 것을 퇴고(推敲)라고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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