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해파랑길

해파랑길 14코스(경북 포항 20210718)

OHO 2021. 7. 19. 14:36

해파랑길 14코스(경북 포항 20210718)

 

 

1. 걷기코스

구룡포항 - 일본인가옥거리(구룡포 조형물) - 구룡포해변 - 삼정해변(삼정리 주상절리) - 석병항 - 다무포 고래마을(강사1리) - 강사2리 - 대보항 - 호미곶 새천년기념관 공용주차장(총거리 14.1 km, 소요시간 5시간)

 

* 출발지 : 경북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구룡포리 일본인가옥거리 버스정류장

* 종착지 :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 호미곶해맞이광장 공용주차장

* 시종 일관 해변길을 따라 걷기 때문에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은 없고 다만, 뜨거운 여름 햇볕에 대비하여 양산(또는 우산)과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2. 코스개요

- 해파랑길의 14번째 코스 포항 구간으로 포항 남구 구룡포읍에서 호미곶면을 잇는 길
- 구룡포항에서 시작해 구룡포 해변을 지나 호미곶에 이르는 구간
- 일본인 가옥을 지나는 길로 동해 경관과 함께 문화와 역사 요소 풍부

 

 

3. 관광포인트

- 1930년대 구룡포 어업을 점령했던 일제강점기 흔적이 고스란히 남겨진 일본인 가옥거리
- 구룡포의 역사와 어업문화를 알아볼 수 있는 과매기문화관과 구룡포 근대역사관
- 울창한 소나무 숲과 바다낚시, 수려한 해안경관이 일품인 구룡포 해변
- 한반도의 꼬리에 해당하는곳으로 매년 새해 때마다 해맞이 인파가 방문하는 호미곶

 

 

4. 여행자 정보

- 포항 고속버스터미널 앞 죽도지구대 정류장에서 200번 버스탑승, 구룡포 환승센터 하차 후 도보이용
- 가을철 도로변 해국이 개화하여 더욱 아름다운 길을 걸을 수 있음
- 출발지점 부근에 식당과 매점이 있으나 코스 내에는 없으니 식음료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음
- 군사지역 통제를 금하니 통행금지 안내문이 있는 경우 들어가지 말 것

 

 

해파랑길 14코스 걷기 계획표

 

걷기지도

 

산악회 제공 해파랑길 14코스 걷기 계획

 

해파랑길 14코스 걷기 트랭글 완주도

 

14코스 걷기 트랭글 운동정보 - 휴식시간 21분은 걷기 도중 정자에서 잠시 간식을 먹은 시간이고, 트랙킹 후 식당에서 식사 및 샤워는 포함되지 않았다

 

구룡포 항구 어시장

 

구룡포항 광장길

 

구룡포항

 

구룡포항 조형물

 

과메기문화거리 아라광장 조형물에 적힌 <고서상의 과메기 이야기> - 소천소지(笑天笑地 / 1918년 최창신) 에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걸어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픈데 해변가를 낀 언덕 위의 나뭇가지에 고기의 눈이 나뭇가지에 꿰인 채로 있는 것을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아 과거를 보고 내려온 뒤로 해마다 겨울이면 청어나 꽁치를  그런 방법으로 말려 먹었다고 전한다.(이하 생략)

 

아라광장 콘서트장

 

해파랑길 13~14코스 안내판

 

14코스 출발지 인증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 동해 최대의 어업전진기지였던 구룡포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 일제가 구룡포항을 축항하고 동해권역의 어업을 관할하면서 일본인들의 유입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현재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가 위치한 거리에는 병원과 백화상점, 요리점, 여관 등이 늘어서고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지역상권의 중심 역할을 했다. 그러나 남아있는 일본가옥들은 각종 개발과정에서 철거되고, 오랜 세월동안 훼손되면서 과거 우리 민족에게 아팠던 역사의 산증거물이 사라져가는 실정을 맞았다. 이에 포항시는 지역 내 가옥을 보수. 정비하여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의 풍요했던 생활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상대적으로 일본인에게 착취되었던 우리 경제와 생활문화를 기억하는 산 교육장으로 삼고자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를 조성하였다. 2011년 3월부터 시작된 정비사업을 통해 457m 거리에 있는 28동의 건물을 보수한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2012년 12월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제2회 대한민국 경관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도심활성화 사업의 우수 사례로 선정되었다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출입문 안쪽

 

계단 왼쪽에는 <구룡포공원 입구>, 오른쪽에는 <구룡포충혼각 입구>라고 적혀있다

 

KBS 동백꽃 필 무렵 촬영지 -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는 2019년 9월부터 11월까지 방영한 KBS2TV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라고 적혀있다

 

구룡포항을 벗어나 구룡포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의 바다 경치

 

구룡포해수욕장

 

구룡포해수욕장 인증 - 햇빛이 너무 강해 눈이 부신다

 

삼정항 - 통발이 많이 쌓여있다

 

삼정항

 

삼정섬 - 삼정섬 안에는 <관풍대>라는 횟집과 회를 먹을 수 있는 정자가 하나 있어 삼정섬을 관풍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삼정섬(관풍대라고도 한다)

 

삼정3리방파제

 

삼정3리방파제

 

강사리방파제

 

강사리 고래마을 해변의 고래조형물

 

갯바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관광객

 

드디어 호미곶 등대와 해맞이공원이 보인다

 

포항 호미곶의 상징인 손 조형물 - 보통 왼쪽에 보이는 데크에서 일출을 감상한다. 호미곶은 우리나라(섬 제외)에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지만 지축의 기울기 때문에 울산의 간절곶이 조금 더 빨리 뜬다고 알려져 있다.

 

호미곶 인증

 

해파랑길 14~15코스 안내도

 

14코스 종착지 인증 - 햇볕이 너무 강해 시종일관 우산을 쓰고 다닌다

 

호미곶등대

 

호미곶등대(虎尾串燈臺) - 경상북도 기념물 제39호.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호미곶길 99에 있는 이 등대는 대한제국 융희 원년(1907년)에 일본 선박이 대보리 앞바다의 암초에 부딪혀 침몰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프랑스인이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가 시공을 맡아 1908년 12월에 준공되었다. 높이 26.4m의 팔각형 서구식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기초에서부터 등탑의 중간부분까지 곡선을 그리면서 폭이 점차 좁아지는 형태이며, 다른 고층건물과는 달리 철근을 사용하지 않고 벽돌로만 쌓은 것이 특징이다. 등대 내부는 6층으로 각 층의 천장에는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인 오얏꽃(李花) 모양의 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호미곶 호랑이상

 

호미곶 광장에 또 다른 왼손 모양의 조형물이 하나 더 있다 - 바다에 있는 것은 오른 손

 

새 천년의 빛 - 영일만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하여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가 돋는 곳입니다. 여기 이 <영원의 햇불>은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1월 1일 이곳 영일만 호미곶의 첫 햇빛으로 채화하였습니다. 이 불은 변산반도에서 채화한 지난 천년의 마지막 일몰 불과 남태평양의 피지섬에서 채화한 새 천년의 일출 불과 함께 조국의 평화통일과 사해 동포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민족의 불로 존치될 것입니다. 조형물의 형태는 묵은 천년을 나타내는 아랫부분의 사각물과 새 천년을 상징하는 윗부분의 역사각물로 구성되었으며 이들이 영원과 화합을 뜻하는 원형의 고리로 연결됨으로써 지난 천년의 빛과 정신을 사방으로 확산하는 태양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광장의 왼손과 동쪽바다의 오른 손은 전쟁과 갈등과 배타적인 지난 천년의 <한 손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와 희망과 번영으로 온 인 인류가 화해하고 서로 돕고 함께 사는 새 천년의 <두 손의 정신>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조형물은 300만 경북도민과 52만 포항시민의 여망을 담아 이의근 경북지사와 정장식 포항시장의 제안으로 조각가 영남대학교 김승국 교수가 제작하였고 이어령 새천년준비위원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대구은행의 협찬을 받아 이루어졌습니다. - 2000년 1월 1일

 

연오랑과 세오녀 상  - 일련의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8대 아달라왕 4년(157년)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동해안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해초를 따는데 바위가 움직이더니 그를 실은 채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갔고,일본인들은 비범한 사람이라며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다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바위 위에 올랐다. 그러자 그 바위는 또 다시 움직여 세오를 일본으로 데려갔고 세오는 연오와 재회해 왕비가 되었다. 한편, 그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신라 아달라왕이 점술가를 불러 그 까닭을 점치게 하자, 점술가는 우리나라의 해와 달의 정기를 품은 이들이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신라 왕이 사람을 보내 연오와 세오에게 돌아오도록 촉구했으나 두 사람은 돌아올 수 없다고 하며 대신 세오가 직접 짠 비단을 보냈다. 왕이 그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자 비로소 해와 달이 빛을 되찾았다. 그 비단을 국보로 보관한 창고를 귀비고(貴妃庫),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던 곳은 훗날 도기야(都祈野) 혹은 영일현(迎日縣)이라 불렸다.

 

새 천년 기념관

 

동해의 상징 돌문어 상 - 바다 쪽 데크전망대에서 작은 돌문어 조형물이 있지만 이 건 꽤 크다

 

공영주차장 주변에 핀 여름꽃의 대명사 해바라기 - 해바라기의 꽃말은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서양에서는 태양만 바라본다고 하여 <애모> 또는 <숭배>이고, 아메리카 원주민들 그중에서도 잉카문명 하에서는 <거짓 부>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태양신을 믿는 잉카인들은 해바라기를 태양의 아들로 섬겼지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후 스페인에 의해 황금과 보물들을 약탈당한 후 <거짓부> 또는 <가짜 황금>라는 꽃말이 붙게 되었다고 한다. 동양 특히 중국에서는 금을 상징하는 노란색 꽃 때문에 <생명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트레킹을 끝내고 종착지 주변 식당에서 물회 한 그릇과 초스피드 샤워를 한 후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