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야화 등

초한지 - 사면초가(四面楚歌)

OHO 2016. 2. 14. 12:52

초한지 -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면초가란 말은 주로 궁지에 몰려 빠져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사용하는 말이지만, 그 원래의 의미는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의 노래란 뜻입니다

 

사면초가란 말의 어원은 중국 역사서인 史记(사기)의 項羽本记(항우본기)에 나오는데,

소설 초한지에서는 이 말에서 이야기의 내용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아래 내용은 소설 초한지의 내용을 추억하여 인터넷에서 검색한 사면초가와 관련된 몇몇 자료를 재구성하여 작성해 보았습니다

 

♡♡♡♡♡

 

초폐왕 항우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직전인 전국시대 때 태어났는데 그의 할아버지는 초나라의 대장군을 지낸 항연이었다.

 

항우는 이처럼 귀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진시황의 진나라가 대륙을 통일하면서 가문이 몰락하고 가난하게 어린시절을 보낸다.

 

항우가 장성했을 때 키가 8척에 이르렀고 힘이 천하 장사였을뿐 아니라 병법에 관심을 보여 훌륭한 대장군감이었다. 

 

이후 진나라의 진시황이 죽고 진나라 전체가 혼란에 빠져 버리자 전국에서 무장봉기가 일어났는데 이때 항우도 삼촌 항량과 함께 회계에서 들고 일어나 세력을 형성하였다.

이후 중국 이곳저곳에서 몰려드는 호걸과 책사 범증을 맞으면서 천하를 움켜쥘 기회를 잡은 항우는 그의 삼촌 항량이 진나라와의 전투에서 죽자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후 거록전투에서 진나라 대군을 부수며 중국 전역에 이름을 높이게 되었고 당시 그에 맞서 싸울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던 유방마저 함곡관 전투에서 무너뜨리면서 천하가 항우 손에 다 들어온 듯이 보였다. 특히 진나라 왕 자영을 죽이고 자신 스스로 서초의 패왕이라 칭하며 유방에게 한중땅을 주며 한왕으로 임명하는 듯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련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세력을 확장한 항우는 점차 자만감에 빠지기 시작했고, 자신과 함께 전투를 참여하며 공을 세웠던 많은 휘하 장수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해주지 않자 그 세력이 점점 분열되기 시작했다

 

이와 반대로 유방은 주변세력을 통합하는 전략을 통해 세를 불리며 떠오르기 시작한다. 이후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던 항우는 마지막 전투인 해하전투에서 유방에게 패하면서 포위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런 내용은 중국 역사서인 史记(사기)의 項羽本记(항우본기)에서 이렇게 전한다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霸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동쪽은 항우가, 그리고 서쪽은 유방이 차지하기로 하고 천하를 양분하는 강화를 체결하면서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인질로 잡고 있던 유방의 가족을 넘겨주고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고,

유방은 한중[漢中:섬서성(陝西省)의 한강(漢江) 북안의 땅]으로 철수하기 위해 서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유방의 책사 장량(張良)과 진평(陳平)은 항우의 세력은 꺾였고 대부분의 제후들이 유방의 사람이 되어 세력이 크게 우세해진 이때에 항우를 쳐 죽여야한다는 진언을 해 말머리를 돌려 다시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안휘성(安徽省) 내]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가 격감 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힘겹게 저항하고 있는 초군의 진영으로 한밤중에 '사면에서 초나라의 노래[四面楚歌]' 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힘들고 지루한 전쟁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버린 초나라 군사들은 그리운 고향 노랫소리를 듣고는 전투할 의욕을 잃고 눈물을 흘리며 앞다투어 군영을 이탈하여 도망쳤다.

 

유방의 책사 장량이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을 사방에 배치하여 초나라의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하는 심리 작전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랐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이 많은고?'

 

이미 끝장났다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의 진중에는 우미인(虞美人)이라 불리는 애인 우희(虞姬)와 추(骓) 라는 준마 한 필이 있었다. 항우는 우희가 애처로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비분강개(悲憤慷慨)하여 시를 읊고 또 읊었다.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지만

 

時不利兮 骓不逝(시불리혜추불서)

때는 불리하고 추는 가지 않누나

 

骓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고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우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면 당초 그가 군사를 일으켰던 땅인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모두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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