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고사성어 - 선즉득복(善則得福)>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는 말로서 남에게 좋은 일을 베풀면 그만큼의 보답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효종실록(孝宗實錄), 한국오천년야사(韓國五千年野史)에 의하면,
조선의 제17대 효종(孝宗.1619~1659)이 폐포파립(弊袍破笠:헤진 옷과 부서진 갓) 차림으로 잠행(潛行.임금이 남몰래 행동함)을 나갔다.
때는 마침 한여름이어서 매미 우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날이 저물어 그날 저녁을 지낼 마땅한 곳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낭랑하게 글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여름에 글을 읽다니, 궁금하기도 하고 하룻저녁 잠자리도 알아보자는 생각이 들어 찾아갔다.
그 집 대문에 이르러서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부르니 한 중년 선비가 나왔다.
“지나가던 나그네인데 날이 저물어 그러하니 하룻밤 유숙하게 해 주시오.”
“워낙 누추해서…….”
“한데보다는 낫겠지요. 아무 데나 좋으니 허락해주시오.”
“정히 그러시다면 들어오십시오.”
이리하여 방에 들어서니 한쪽 벽에 ‘아독무어(我獨無魚= 나 혼자만 물고기가 없다)’ 라고 쓰여 진 글귀가 보였다.
효종은 그 글을 써 붙인 이유가 궁금해서 물었다.
“주인장. 저 글이 무슨 뜻이오?”
“아. 아실 것 없소이다. 그저 장난으로 써놓은 것일 뿐이오.”
이윽고 밥상을 차려왔다.
그런데 밥이 녹쌀밥(메밀밥)이었다.
거기에다 반찬이라곤 달랑 배추국 하나였으나 시장이 반찬이라 효종은 달게 들었다.
그런데 주인은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물어보나마나 손님을 대접하느라 밥이 없어 굶는 것이 분명했다.
효종은 어떻게든 돕고 싶어서 물었다.
“저 ‘아독무어’ 라는 말이 대체 무슨 뜻이오?”
“재차 물으시는 걸 보니 호기심도 많소이다. ‘공부는 했으나 고기가 없어서 과거에 급제를 하지 못한다.’는 뜻이올시다.”
“허허! 뭔가 사연이 있을 것 같은데 마저 말해 보시구려.”
“별 뜻 없는 글인데 물으시니 대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뜻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꾀꼬리와 왜가리가 살았는데 서로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고 시비가 붙었답니다.
그래서 제3자에게 판결을 받자고 했죠.
그리하여 하늘 높이 유유자적하며 나는 솔개에게 부탁했읍죠.
그런데 약삭빠른 왜가리는 판결 전날 밤 붕어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솔개를 찾아가 자기를 뽑아 달라고 부탁을 했답니다.
다음 날, 꾀꼬리와 왜가리는 솔개를 찾아가서 누가 더 노래를 잘하는지 가려 달라고 하며 꾀꼬리가 먼저 아리따운 목소리로 한 곡조를 기가 막히게 뽑았죠.
그런데 이것이 무슨 날벼락 입니까!
솔개가 면박을 주며 말했답니다.
‘아니, 그것도 노래라고 불러? 영락없이 돼지 목 따는 목소리지,’
그리고는 왜가리에게 말했죠.
‘다음은 왜가리 선생께서 한번 불러보시지.’
그러자 왜가리가 쾍! 쾍! 소리를 질러댔죠. 솔개는 무릎을 탁 치면서
‘허허. 과연 사내대장부 목소리로다.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구먼!’ 하고 칭찬하더랍니다.
그런 사정을 글로 써 놓은 것입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효종이 말했다.
“주인장! 과거 시험이 있다고 하거든 꼭 올라가서 응시해 보시구려.
그리고 그때 한양에 가거든 종로의 어디어디에서 나와 만납시다. 마침 이번 시험관이 나와 절친한 사람이 될 거라고 하니 도움이 될 것 같소.”
그리고 효종은 상경하자마자 별과를 본다는 방(榜)을 전국에 내걸게 했다.
당연히 아독무어 선비도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한양으로 향했다.
그리고 약속된 장소에서 그 나그네를 만나니, 나그네가 말했다.
“이번 시험은 백 보 앞에다 세필(細筆)로 솔개 연(鳶)자를 써놓고 무슨 자냐고 물어서 알아맞히는 것이라고 합디다.”
선비는 이제 장원급제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과장에 들어가니 팔도에서 올라온 응시자들이 우글우글했다.
그런데 과거를 마치고 나온 선비들이 모두들 툴툴거렸다.
“세상에 무슨 놈의 과거가 이래?
시제를 세필로 보일락 말락하게 써놓고 읽으라니 천리안(千里眼)이 아니고서야 누가 그걸 읽겠어!”
드디어 선비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과장에 들어서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모든 생각이 머리에서 싹 달아나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과시관이 말했다.
“저기 쓰인 글자가 무슨 자인지 읽어 보시오.”
선비는 입이 얼어붙은 듯 대답을 하지 못했다.
“두 번째 묻겠소. 어서 말하시오.“…….”
“이제 마지막이오. 어서 말하시오.”
선비는 다급한 나머지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다.
“예. 빙빙 연(鳶)자입니다.”
효종은 낙심을 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공부는 많이 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는구나!’
선비도 실망하여 고개를 숙이고 나오는데 그제야
‘아. 솔개 연자지!’ 하고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는 지나갔다.
십년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고 만 것이었다.
억수로 운이 없었다.
선비는 이제 자신은 틀렸고 누군가에게 일러 주어 좋은 일이나 하자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젊은이에게 자기는 ‘빙빙 연(鳶)’ 자라고 해서 낙방했는데 ‘솔개 연(鳶)’자라고 말하라고 일러 주었다.
그 젊은이가 과장으로 들어갔다.
한편 과시관으로 앉아있던 효종은 이제 흥미가 없었다.
워낙 한 사람만을 위한 과거였던지라 정답을 알 사람도 없을 터여서 어찌할까 망설이고 있는데 한 젊은이가 들어섰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답을 한양 음으로 말할까요? 아니면 시골 음으로 말할까요?”
효종은 그 말이 흥미로웠다.
“두 가지 다 말해 보아라.”
“한양 음으로는 솔개 연(鳶)이올시다.
그러나 시골에서는 하늘에서 빙빙 돈다고 해서 빙빙 연(鳶)이라고도 합니다.”
젊은이는 자기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그 선비에게 보답하고자 순간적으로 재치를 발휘했던 것이다.
“뭐, 빙빙 연(鳶)? 그럼 조금 전 그 선비도 맞힌 거잖아. 내가 시골 음을 몰랐구나. 여봐라! 조금 전 그 과객을 찾아 들여라! 어서.”
그리하여 그 선비가 다시 불려왔다.
“미안하오. 선비가 장원이오. 조금 전에는 내가 시골 음을 몰라서 그런 것이니까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그리하여 두 사람 모두 급제하여 후에 한 사람은 평양감사(平壤監司)가 되고, 또 한사람은 도승지都承旨가 되었다.
- 임종대 편저 한국고사성어에서 -
'한문 야화 등' 카테고리의 다른 글
퇴계 이황과 관기 두향의 사랑 - 서로 보고 한 번 웃은 것은 (0) | 2016.02.22 |
---|---|
什么叫信任 - 믿음이란 무엇일까 (0) | 2016.02.21 |
野话 - 色即是空 空即是色 (0) | 2016.02.15 |
초한지 - 사면초가(四面楚歌) (0) | 2016.02.14 |
중국 항주 (0) | 2016.0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