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 야화 등

퇴계 이황과 관기 두향의 사랑 - 서로 보고 한 번 웃은 것은

OHO 2016. 2. 22. 14:16

<퇴계 이황과 관기 두향의 사랑 - 서로 보고 한 번 웃은 것은>

 

相看一笑天應許(상간일소천응허)

서로 보고 한번 웃은 것은 하늘이 허락한 것이었네

 

有待不来春欲去(유대불래춘욕거)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이 다 가려 하는구나

 

♡♡♡♡♡

 

관기였던 두향의 퇴계(退溪) 선생에 대한 일편단심은 늘 심금을 울린다.

 

퇴계 선생이 단양 군수로 부임한 것은 48세, 두향의 나이 18세 때였다.

퇴계 선생은 부임 전후 몹시 힘들었다.

첫 부인에 이어 두 번째 부인과도 사별했다. 부임 한 달 만에 둘째 아들마저 잃었고, 자신은 늘 병마에 시달렸다.

선비의 기품은 흐트러짐이 없었지만 마음만은 아팠다.

 

그 무렵 시, 서, 가야금에 능했고 특히 매화를 좋아했던 두향을 만 났다.

두향은 첫눈에 퇴계 선생에게 반했지만 풀 먹인 안동포처럼 빳빳했던 퇴계 선생은 두향의 애간장을 녹였다.

 

두향은 어떤 유혹에도 무관심하던 선생을 면밀히 관찰한 후 마침내 매화를 선물했다.

이 매화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물려준 것으로 두향이 8년간이나 길러왔던 귀한 것이었다.

선생은 그것도 뇌물이라 생각해 받기를 거부했다.

 

두향은 "매화 는 고결하고 엄동설한에도 굽힘이 없는 기개를 가졌다. 그런 군수가 되어달라"고 설득했다.

마침내 선생은 마음을 열었다.

이후 두 사람은 산수를 즐기고 시와 거문고로 꿈같은 열 달을 보냈다.

 

퇴계는 자신의 친형이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공정함을 잃을 수 있다고 하여 이웃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자원했다.

두향으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었고 충격이었다.

 

이별의 잔을 두고 선생이 입을 열었다. "떠나야만 하는구나. 기약이 없으니 두렵기만 하구나."

 

두향이 서글픈 심정을 시에 담았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울제,

어느 듯 술 다하고 님 마저 가는구나,

꽃 피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한단 말인가.

 

퇴계가 떠난 후 두향은 후임 군수를 찾아가 관기를 면하게 해달라고 했다.

군수가 당돌 함에 노여워할 때 두향이 말했다.

 

"퇴계 선생을 모시던 몸으로 다른 남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선생의 인품에 대한 모독입니다. 관기를 면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 니다."

 

마침내 두향은 관기를 벗어나 고향마을 강 맞은편 강선대 옆에 움막을 짓고 퇴계와의 사랑을 추억하며 혼자 살아갔다.

 

애타하며 지내던 20여년 후 두향은 전별시를 써주 었던 속치마와 함께 직접 키운 홍매화 하나를 퇴계에게 보냈다.

 

퇴계 또한 하루도 잊을 수 없었기에 속치마에 칠언 시구를 추가했다.

 

相看一笑天應許(상간일소천응허)

서로 보고 한번 웃은 것은 하늘이 허락한 것이였네

 

有待不来春欲去(유대불래춘욕거)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봄날이 다 가려 하는구나

 

퇴계는 도산서원 계곡의 맑은 물 한 동이를 속치마와 함께 이방편에 보냈다.

 

두향 의 나이 사십이 되던 해 먹던 물에서 역한 냄새가 나고 물 사발이 깨졌다.

두향은 직감했다.

두향은 퇴계 선생의 부음을 듣고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열 달의 만남, 21년 의 이별.

한 사람이 죽어서야 두 사람은 만날 수 있었다.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의 짐 속에는 두향이가 준 수석 2개와 매화 화분 하나가 있 었다.

퇴계 선생은 평생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매화를 두향이 보듯 애지 중지했던 것이다.

선생의 매화시첩 118수의 시는 모두 두향을 만나고 난 후 만들어진 작품이다.

 

선생은 나이가 들어 모습이 초췌해지자 "매화에게 이 모습을 보일 수 없다"고 하 시면서 매화 화분을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 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 선생의 마지막 한 마디는 "매화에 물을 주어라"였다.

그 말 속에는 그만큼 가슴 속에 두향이가 가득했다는 증거이다.

 

대성통곡하며 먼 발치에서 빈소만 바라보다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두향은 며칠을 굶었다.

그리고 마침내 강선대(降仙臺)에 올라 거문고로 '초혼가'를 탄 후 강물에 몸을 던졌다.

 

"내가 죽거든 강가 거북바위에 묻어주오.

거북바위는 내가 자주 선생을 모시고 인생을 논 하던 곳이니….

죽어선들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순간이 전체가 되어버린 열 달의 사랑!

지나고 나면 아쉽지 않은 순간이 어디 있으랴마는 아름다운 것은 늘 짧다.

봄은 오는 듯 가버리고,

꽃은 피는 듯 지고 만다.

구름은 서산으로 사라지고,

님은 꿈속으로 사라진다.

만남은 짧고,

이별은 길다.

다시 올 수 없는 순간이기에 불탈 수 있을 때 아낌없이 태워야 한다.

아름다운 것은 짧다.

아니 짧기에 아름다운 것 아니겠는가!

 

- 수필가 겸 칼럼니스트 황태영 글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