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서 - 부산동기들과 서울동기들 합동산행(2005.10.23)
나는 한 잎
낙엽이고 싶어라
북한산 백운봉
인수봉, 만경봉......
산 그림자 배경 삼아
아름답게 채색된 단풍잎도 좋지만
나는 한낱 바위 아래 나뒹구는
낙엽이고 싶어라
나는 한 잎
낙엽이고 싶어라
빠알갛고 노오란 단풍잎도 좋지만
아무런 눈길 타지 않는
떨어져 퇴색된 낙엽이고 싶어라
찬바람이 불어와도
애써 매달리려 하지 않고
바람 불면 부는대로
온 몸 내맡기고
마음껏 나뒹구는
낙엽이고 싶어라
여름의 끝자락이 아직도 거친 숨을 토해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뜻밖의 찬바람에 옷깃을 여민다. 오늘은 멀리 부산에서 귀한 손님들이 오시는 날이다. 내가 뭐 주연이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손님맞이에 참석하는 서울주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름대로의 역할은 있게 마련이다.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 부지런을 떨며 집을 나선다.
지하철 4호선 수유역을 거쳐 북한산 아카데미하우스 입구에 닿으니 벌써 우리 서울팀의 송여사(이윤석 부인), 이여사(예창기 부인) 등 몇몇 열성파 아낙네들이 먼저 와서 손님맞이 준비에 바쁘다. 등반대장인 중산(이윤석)과 예산(예창기)은 서울역으로 마중을 나가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둘 서울팀이 도착하고, 10시에는 마침내 부산 동기들을 태운 버스가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44명의 우리 동기생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쏟아지듯 일시에 차에서 내려온다. 모두가 반갑고 보고 싶던 얼굴들이다. 잠시간의 정담을 나눈 후 오늘 만남의 목적인 북한산 등반을 시작한다.
오늘 산행계획은 아카데미하우스에서 출발하여 구천계곡을 거쳐 대동문, 동장대, 북한산장, 용암문을 거쳐 노적봉의 옆을 지나 만경봉의 산허리를 따라 위문에 도착하여 북한산 정상인 백운봉(흔히들 백운대라고 하나 이는 일제시대에 우리나라를 폄훼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 하며, 만경대란 이름도 마찬가지임)을 오른 다음, 하산길은 백운산장, 인수대피소, 하루재를 거쳐 백운매표소인 도선사 앞에서 우이동계곡의 도로를 따라 내려와 버스 종점에 있는 도토리마을이란 음식점에서 서울-부산팀이 같이 식사를 나누고 서울역에서 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입부터 이게 웬일이냐? 중산 대장이 엉뚱한 길로 가고 있다. 구천계곡이 아니라 이준열사 묘지 쪽이다. 순간적인 착각을 일으킨 것이리라! 북한산은 길이 많으니 아무데로나 가기만 하면 되지만 그래도 구천계곡 쪽에도 나름대로의 볼거리가 있는데....... 덕분에 한 10~20분 시간을 절약하게 되었다. 좁은 계곡의 소로에는 우리 동기들이 길을 꽉 메운 채 올라가고 있다. 북한산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낯선 것은 아니지만 이 모두가 우리 동기들이라니 가슴 벅찬 감흥이다.
아카데미하우스 입구에서 대동문까지는 대략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 대동문은 북한산의 여러 관문 중 가장 넓은 공간을 확보하고 있어 많은 등산객들이 휴식 겸 중간 만남의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라 늘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어서 수많은 등산팀들이 곳곳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가져온 간식도 꺼내 먹으며 계속되는 행군에 대비하여 숨고르기를 해본다.
이제부터는 북한산의 주능선에 해당한다. 산성길을 따라 동장대에 오르면 멀리 문수봉과 함께 의상능선의 가냘픈 곡선이 하늘금을 그으며 눈앞에 다가온다. 서울의 대표적 명산이면서도 대도심 한가운데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산이 있다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현상이라고 한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거친 여름의 숨결을 느끼며 산을 오르내렸는데 오늘 와 보니 여름은 이미 저만큼 가버리고 대신 찬바람에 떨어진 낙엽이 사방에 나뒹군다. 가을 단풍은 제대로 구경도 못했는데 웬 낙엽이 이러도 어지러울꼬! 곳곳엔 아직 아름다운 색깔의 단풍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떨어질 듯 떨어질 듯 애처로이 매달려 안간 애를 태우고 있다. 가을은 아직 오지도 않은 채 이미 겨울로 넘어가기 시작하나 보다.
북한산장 주변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끼리끼리 모여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우리도 널찍하니 자리를 잡아 식사를 즐긴다. 사방엔 온통 떨어져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 가을바람에 나뒹군다. 나뭇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이 마냥 감미롭기만 하다. 낙엽이 폭신하다고 느낄 때쯤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어느 밥상이 이렇게 달콤할 수 있으며, 어느 모임이 이렇게 정다울 수 있으랴! 지축만이 가질 수 있는 우정의 꽃이 활짝 핀 것이리라!
용암문을 거쳐 노적봉으로 향한다. 길가의 소나무가 더운 몸 식히라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운다. 오솔길을 지나 노적봉을 오를 때엔 제법 우둘두둘한 너덜바윗길이 이어진다. 노적봉은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이 한성을 침공하려고 하자 노적봉 봉우리 전체에 빈 쌀가마니로 덮어 군량미를 많이 쌓아놓은 듯이 보이도록 하여 군량미가 저 정도면 군사 또한 대단한 규모일거라고 생각하여 침공을 포기토록 하였다는 말이 전하는 곳이다.
만경봉의 산허리를 돌며 백운봉으로 향한다. 바위와 비탈길이 혼재한 구간으로 겨울에는 눈얼음이 쌓여 매우 위험한 구간이기도 하다. 저 너머 지나온 노적봉의 우뚝 솟은 모습도 대단한 운치를 풍기지만 그 아래에 나란히 봉긋하게 솟아오른 원효봉과 염초봉도 아름답다. 눈 가는 곳마다 새롭지 않은 것이 없고 펼쳐진 곳마다 절경 아닌 곳이 없다. 파아란 하늘이 더더욱 고고한 천고마비의 가을이다.
위문 아래에 닿으니 언제나 그랬듯이 백운봉 허리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매달려있다. 산중의 산 - 제왕산(帝王山)인 백운봉의 육중한 무게감에 위압감을 느끼며 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수 억년을 이 자리에 이렇게 버티고 서서 뭇 인간세계를 침묵 속에 조용히 다스려 왔던 제왕의 모습이다. 양옆으로는 동생격인 인수봉과 만경봉이 제왕을 보좌하며 그 위엄을 더해준다.
북한산의 원래 이름은 삼각산(三角山)이다. 백운봉(836.5m), 인수봉(810m), 만경봉(800m)의 우뚝 솟은 모습이 멀리 산 아래에서 보면 세 개의 뿔 모양을 닮았다고 하여 삼각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일제시대부터 북한산이라 불리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는데 북한산의 의미를 자세히 생각해보면 한성, 즉 서울의 북쪽에 있는 산이란 의미가 되어 경기도 광주군의 남한산성과 비교됨을 알 수 있다. 하루빨리 원래의 이름인 삼각산으로 불리길 희망하며 그 웅장하고 장엄한 모습을 바라본다.
오~! 통재라~! 부산 친구들이여! 이국만리(異國萬里) 머나먼 고생길 마다않고 예까지 왔건만 철없는 서울산객들의 행렬에 밀려 백운봉 등정을 양보(?)하고 일정에 맞추기 위해 백운봉 턱밑에서 할 수 없이 하산길로 접어들게 되었구나! 오호~! 애재라~! 그 와중에서도 몇몇 친구들이 백운봉을 올랐다고 하니 다행으로 여겨야지.......
백운산장을 거쳐 인수대피소로 내려온다. 가을은 더욱 깊었는가! 길가의 단풍도 더욱 애처롭게 늙어간다. 인수봉 대피소 부근에서 인수봉을 배경으로 부지런히 기념사진 몇 장을 남긴다. 역시 여행 후에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 커다란 종(鍾)을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인수봉은 우리나라에서 첫 손가락 꼽는 암벽등산의 명소다. 오늘도 수많은 록크라이머들이 인수봉에 매달려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
하루재를 넘어 백운매표소 방향으로 향한다. 겨울이면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하루재도 지금은 그냥 하나의 조그만 고갯마루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젠 오늘 산행도 아무 탈 없이 다 끝나간다는 안도감을 가지며 백운매표소를 지날 때에는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도선사 입구에는 수많은 등산객과 관광객들, 그리고 도선사의 신자들이 엉켜 혼잡한 모습이다. 인파를 뒤로 하고 우이동 포장도로를 걸어 내려온다. 과거에는 저 아래 우이동계곡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떼를 지어 음식과 놀이를 즐겼던 곳이지만 지금은 자연보호를 위해 철조망과 출입금지의 팻말만이 안타깝게 서있다. 자연보호! 우리가 소중하게 가꾸고 지켜 자손만대로 물려주어야 할 아름다운 강산을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우이동 버스 종점에 도착하여 그 아래에 있는 도토리마을이란 음식점에서 삼겹살과 소주로 산행의 노독도 풀고 서울-부산간의 화목도 도모하는 등 계속되는 ‘건배!’를 외치다가 서울역까지 마중가는 것으로 오늘의 만남을 종결지으니........ 장하도다! 경공의 건아들이여! 영원하리라! 둘둘산악회여!
2005. 10. 23 부산 동기들의 둘둘산악회와 북한산을 다녀와서
오호
<아카데미하우스 입구에서>
<대동문을 오르며>
<대동문>
<동장대에서>
<북한산장에 점심을>
<용암문에서>
<노적봉 아래서>
<만경봉 기슭을 돌며>
<만경봉 기슭에서 본 의상능선>
<만경봉 기슭에서 본 노적봉>
<만경봉 기슭에서 본 원효봉과 염초봉>
<만경봉 기슭에서 본 백운봉>
<위문 아래서 본 인수봉>
<백운봉을 오르며>
<인수대피소 부근에서 인수봉을 배경으로>
<도토리마을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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