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술이편의 좋은 문구>
논어 술이편(述而篇, 제7편)에는 공자의 학문 태도와 삶의 자세가 잘 드러난 문구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많이 사랑받고, 지금 읽어도 울림이 있는 구절들은
1. 述而不作(술이부작) 信而好古(신이호고) 竊比於我老彭(절비어아노팽)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전하여 기술하였을 뿐 새로이 지어내지 않았으며 옛것을 믿고 좋아한다. 가만히 생각하니 나는 노팽과 비견되노라.
술(述)은 조술(祖述) 즉 옛것을 전하다. 작(作)은 창작을 말한다. 노팽은 은나라의 대부로 고사(古事)를 잘 전술(傳述)했다.
공자의 지행(志行)을 기록한 술이(述而)편의 서두(序頭)다. 공자는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나는 옛 선왕(先王)의 도(道)와 문물제도, 예교, 덕치 등을 전술했을 뿐 창작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이는 공자의 학문정신이 성인께서 다스리시던 시대의 문화유산을 현실에 적용하고 그 핵심인 인도를 세상에 구현하는 것이었음을 말해 준다. 공자는 스스로 요(堯), 순(舜), 우(禹), 탕(湯), 문(文), 무(武), 주공(周公)의 덕치(德治)를 신봉하고 당시의 예악(禮樂)인 옛 제도와 문물을 좋아한 자신을 고사(古事)의 전술에 능해 유명했던 은나라 대부 노팽과 비교할만 하다고 자부했다.
과거 역사는 지난 일이 아니라 오늘을 있게 한 원인이며 그 과정 속에 역사 발전의 원리가 내재돼 있다. 공자께서 호고(好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새로운 문화 창조는 과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주장한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참뜻이 여기에 있다. 술이부작(述而不作)은 맹목적인 복고주의(復古主義)가 아니다. 과거문화에 대한 학습을 토대로 새 문화 창조를 뜻한다. 전통을 무시한 창조는 뿌리 없는 나무에 핀 꽃과 같다. 잠시 반짝하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학문관이야 말로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귀감으로 삼아야할 진언(眞言)이다. 전통을 잘 가꾸며 지키는 민족은 마르지 않는 문화 창조의 원천을 소유한 지혜로운 민족이다. 술이부작과 호고는 전통계승의 대도(大道)다.
2. 默而識之(묵이지지) 學而不厭(학이불염) 誨人不倦(회인불권)이 何有於我哉(하유어아재)오.
묵묵히 기억해 마음에 새겨두며 배우기를 싫어하지 않고 남을 가르치기를 권태롭게 여기지 않음이 나에게 무엇이 문제이리요?
공자의 학문하는 태도에 대한 말씀이다.
학문한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공부하는 사람의 사명은 무엇인가? 먼저 배운 바를 잊지 않고 기억해 잘 간직하는 것이다.
스승에게 배우고 책을 통해 배우고 경험을 통해 배운 바를 잊지 않도록 마음 속에 새겨두는 노력이 바로 학문하는 첫번째 일이다.
그 다음은 배운 바를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한 시대만이 아니라 후대에게까지 계속 이어지도록 후학에게 배운 바를 가르치는 것이 학자의 사명이다.
인류의 문화가 오늘에 이르도록 발전한 것은 바로 학자들의 이러한 노력 덕분이다. 남을 가르치기 싫증내지 않는다는 것은 교육의 즐거움을 말한다.
공자의 학문하는 태도는 바로 이것에 충실함이다.
마지막 부분의 해석은 학자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첫 번째 해석은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이 세 가지를 행함에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두번째 해석은 앞에 말한 것을 ‘나는 다 행했으니 이것 말고 그 무엇이 또 내게 필요하단 말인가?’ 하는 것이다.
세번째 해석은 ‘나는 앞에 말한 세 가지 이 외에는 그 무엇도 없다’는 것이다.
즉 공자 자신의 인생의 목적과 사명은 오직 이 세 가지 뿐이라는 뜻이다.
사실 공자의 전 생애는 이 세 가지를 실천하는데 일관했다. 본문은 공자 자신의 삶을 말한 것은 물론 학문하는 사람이 마땅히 걸어 가야할 길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지어도, 거어덕, 의어인, 유어예)
도(道)에 뜻을 두고, 덕(德)에 근거하며, 인(仁)에 의지하고, 예(藝)에 노닌다"는 뜻이며, 군자의 이상적인 삶의 태도를 제시합니다. 즉, 인륜의 도리를 목표로 삼고, 덕을 지키는 바탕으로 삼고, 인(仁)을 의지하는 기준으로 삼으며, 예(禮, 樂, 射, 御, 書, 數 - 육예)를 익히며 즐기라는 가르침입니다.
4. 三人行必有我師
(삼인행 필유아사)
擇其善者而從之
(택기선자이종지)
其不善者而改之
(기불선자이개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중에 반드시 내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그들 중 좋은 점을 가진 사람의 장점을 가려 이를 따르고
좋지 않은 점을 가진 사람의 나쁜 점으로는 (반면교사로 삼아)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5. 飯疏食飮水(반소사음수)하고 曲肱而枕之(곡굉이침지)라도 樂亦在其中矣(낙역재기중의)니 不義而富且貴(불의이부차귀)는 於我(어아)에 如浮雲(여부운)이니라.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뚝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이 이 가운데 있으니 의롭지 못하며 부유하고 귀한 것은 나에게 뜬 구름과 같으니라
* 소(疏)-트다, 트이다, 통하다, 멀다, 친하지 않다, 우활하다, 늦다, 거칠다.
*차(且)는 병렬 접속사 대등한 관계를 연결해 준다.
공자의 인생관 가운데 그가 즐거워하신 것이 무엇인가를 제자들에게 밝히신 말씀이다.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개를 베다” 는 것은 가난한 삶을 말한다. 공자께서 즐거워하신 것은 가난이 아니다. 거친 밥과 맹물 마시는 것을 즐기신 것이 아니다. 비록 가난하더라도 생활이 궁핍하더라도 그 가운데서 도를 즐거워하며 사신다는 말씀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이 천리(天理)와 혼연(渾然)히 일치(一致)하시니 가난 따위가 도(道)를 즐거워하는 마음을 동요(動搖)시킬 수 없다. 부유함이나 신분이 고귀함은 외물(外物)에 불과하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외물(外物)에 영향 받지 않는다. 천성(天性)을 잃고 외물(外物)에 미혹되는 것은 군자(君子)가 아니다. 항심(恒心)이 없이 외물(外物)에 좌우돼 희노애락(喜怒哀樂)이 무상(無常)한 사람은 소인(小人)이다. 공자께서는 항상(恒常) 도(道)를 즐거워하며 사는 까닭에 부와 귀는 도(道)를 즐거워하는 삶에 어떤 영향도 미칠 바가 못 된다. 좋은 음식 좋은 옷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그것을 잃으면 불행하다. 높은 지위나 권세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그것을 잃는 순간 불행하다. 좋은 집이나 미인(美人)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자기 집 보다 더 좋은 집, 자기 여자 보다 더 아름다운 미인을 보면 순간에 행복은 사라진다. 외물(外物)은 상대적(相對的)이며 일시적(一時的)이다. 상대적이며 일시적인 것은 변화가 무상하다. 영원불변한 가치, 천성을 지켜 사람답게 올곧게 사는 것 오직 도(道)만이 영구적이며 절대적이다. 사람이 어떤 것에 일생을 걸어야 할 것인가는 자명(自明)하다.
6.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불의이부차귀, 어아여부운)
의(義)롭지 않은 부(富)와 귀(貴)는 나에게 있어서는 뜬구름과 같다는 의미다.
공자는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며 팔을 굽혀 베더라도 즐거움(樂)은 또한 그 가운데 있으니(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基中), 부귀는 뜬구름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蔬食(소사)는 채소 반찬뿐인 밥으로 거친 밥이라는 뜻이다. 성인(聖人)의 마음은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착한 본성, 즉 천리(天理)여서 비록 지극히 곤궁(困窮)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즐거움이 있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의롭지 못한 부귀(富貴) 보기를 마치 뜬구름 같이 여겨 막연히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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