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문

뿌리 깊은 백수가 되자

OHO 2014. 7. 7. 18:24

1년간의 공로연수는 끝났고
연금증서가 날아 왔다
나의 직업도 이젠 공무원에서 실업가(失業家)로 바뀌었다
왠 실업가?
직장이 없으니 실업(失業)이요
일반 실업자와는 달리 정년퇴직까지 근 40년 가까이 해먹고 직장을 떠났으니
그냥 놀고 있는 자(者)라기 보다는
뭔가 한 가지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에게 붙여 주는 가(家)가 더 맞을 듯 해서다
 
백수도 나름대로의 등급이 있다고 한다
화려한 백수라는 의미의 화백은 청년기에 어울리는 이름이고
나이가 좀 들면 장노(장기간 노는 사람)나 목사
(목적 없이 사는 사람)가 제격이란다
 
그리고 또 몇년이 더 지나면 주변에서 기독교 계통의 감투만 쓰고 있으면 편향된 사고를 하게 된다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불교 계통의 직함도 억지로 하나 갖다 붙여준다고 한다
이름도 그럴 듯 한 지공대사 라고 한다
내용인즉 지하철 공짜로 타고 대책 없이 사는 사람이란다
 
1년간 사회적응을 위해 휴가 아닌 휴가를 보내고 나니
참 노는 것도 직장 못지 않게 힘이 든다
 
가(家)가 되기 위해서는
매일 운동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해야한다
대단한 인내와 끈기가 필요하다
 
직장과 차이가 있다면
직장은 수동적 출근을 하는데
백수는 자발적 출근을 해야 한다
 
직장에서는 모든 일을 타의에 의해 수동적으로 하지만
백수는 모든 일을 자의에 의해 자발적으로 한다
 
직장에서는 모든 일을 직장이라는 타인을 위해 하지만
백수는 모든 일을 본인을 위해 한다
 
직장에서는 정해진 룰에 따라 이 눈치 저 눈치 살피며 일을 하지만
백수는 아무런 눈치 살피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일한다
 
이렇듯 백수는 모든 면에서 자유로우나
끊임 없이 나태해지려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겨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어쨋든 직장이든 백수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낙오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음~~~!!!
백수생활도 결코 쉽지 않네~~!!
 
1년간의 공로연수 결과
무엇을 얻었나??
뭐 특별한 건 없지만
돈 못지 않게 중요한 소위 삶의 의미란 걸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생활고에 쫒기다 보니 너무 삶의 의미란 걸 잊고 살았다
그리고 세월은 생각보다 더 빨리 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젠 돈 걱정은 잊어버리자
넉넉하진 않지만 그럭 저럭 먹고 지낼 만은 하다
내일이면 70이고
모래는 80 이 되는 게 세월이란다
 
그 놈 그렇게 생각지 않았는데
재빠르기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정도다
다 지나고 난 다음 허무했다 원망한들 무엇하랴
남은 시간이나마 나를 위해서도 좀 쓰야하지 않을까
 
직장 다니느라 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
전부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해보고 가는 것이 덜 후회스럽지 않겠나
 
늦었지만 이제 나도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남은 시간을 좀 나답게 쓰고 죽자
나를 위하여 하고 싶었던 것도 좀 하면서
마음 속에 알곡도 차곡 차곡 쌓아가면서
가(家) 되고, 가(家) 답게
그렇게 살자

2014. 7. 7. 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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