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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先進 福祉에 걸맞은 시민인가

OHO 2015. 2. 17. 10:24

우리는 先進 福祉에 걸맞은 시민인가

 

  • 김홍수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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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수 경제부 차장

     

     

     

    몇 년 전 고위 외교관 아내로부터 1970년대 우리 외교관들의 애환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를 들은 적이 있다. 꼭 참석해야 할 외교 사절 파티는 많은데 연미복을 사 입을 돈이 없어 고민이었다. 궁리 끝에 짜낸 꼼수가 백화점에 가서 고급 양복을 산 뒤 파티 때 잘 입고 나서 다음 날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환불받는 방법이었다. 가난했던 시절의 씁쓸한 이야기다.

    영화 '국제시장' 주인공 세대의 이런 악전고투(?) 덕에 후배 세대인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세대는 과연 소득 수준에 걸맞은 '교양인'으로 성장했을까.

    10여년 전 프랑스에서 어학 연수생 신분이던 시절, 여섯 살 난 아이를 공립 유치원에 보냈다. 교육비는 공짜지만 점심 밥값은 내야 했다. 점심값은 부모 소득수준에 따라 달랐다. 서민층은 공짜지만 고소득자는 끼니당 5000원가량 내야 했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 주재원들은 소득을 낮게 신고해 아이 점심값을 적게 내고는 무슨 무용담인 양 자랑하고 다녔다.

    이런 풍경은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돼도 변하지 않았다. 2008년 특파원으로 다시 파리에 갔을 때 둘째를 공립 어린이집에 보내고 싶었지만 맞벌이 부부여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의 주재원 중에는 배우자의 가짜 재직 증명서를 만들어 공립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는 사람이 있었다. 이런 장면을 보고 '과연 우리의 의식 수준이 선진 복지 제도를 수용할 준비가 돼 있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물론 프랑스 같은 선진국에도 자격 요건을 조작해 복지 혜택을 부당하게 누리는 '공짜 점심족(族)'이 있다. 복지 역사가 100년이 넘고 소득의 40~50%를 세금으로 떼이니 '딴맘'을 먹는 사람이 생길 법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선진 복지가 이제 갓 시작됐고, 소득 대비 세금 납부율은 선진국의 절반 수준인데도 납세자들 사이에 '공짜 심리'가 만연해 있다. 나라에서 무상(無償) 보육을 해준다고 하니 전업주부들도 앞다퉈 자녀를 보육원에 맡긴다. 이자·연금 소득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건강보험에 무임승차하려고 온갖 꼼수를 쓴다. 월급쟁이와 자영업자의 3분의 1 이상이 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면서 복지 혜택만 기대하는 것은 정상 상황이 아니다. 그런데 연말정산 대란에서 드러났듯이 다수 국민은 선진 복지를 원하면서 세금을 더 낼 생각은 없다. 복지를 권리로만 인식하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책임은 남의 일로 여긴다.

    선진 복지가 뿌리를 내리려면 거기에 걸맞은 시민 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오늘의 선진국들은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절에 복지·분배·노사협력 모델을 만들어 미래를 도모했다. 이기심과 공익의 조화와 그것을 위한 타협은 선진 시민사회의 필수 덕목이다.

    우리도 가능성을 보여준 전례가 있다. 외환 위기 때 '금(金) 모으기 운동'이 그것이다. 유럽 재정 위기 당시 유럽 지식인을 만나면 자신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보여준 시민 의식과 연대 의식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자화상은 어떤가. 우리 안의 시민 의식은 어디로 사라지고 무임승차자만 넘쳐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