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수도권산행

불암산(2005.11.19)

OHO 2005. 11. 19. 17:19

남성적 중후함과 여성적 섬세함이 조화로운 불암산

 

 

불암산(해발 508m)은 서울의 5대산(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수락산, 불암산)중 가장 낮고 규모가 작은 산이지만 산 정상부가 온통 매끈한 바위산을 이루고 있어 대단히 육중하고 기품이 있어 보이는 산이다. 서울 근교의 다른 산들과 마찬가지로 교통이 편리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불암산은 또한 산 경계에 인접하는 상계동, 중계동 등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휴일이면 운동 삼아 가벼운 마음으로 오르내리는 산이기도 하다.

 

<불암산 전경>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휴일 날 특별히 갈 곳이 없으면 오르내리던 산이었는데, 금년에는 연초에 두어 번 오르고 그 이후로는 오늘이 처음인가 보다. 불암사 일주문을 통과하며 현판을 바라보니 「천보산 불암사(天寶山 佛巖寺)」라고 새겨져 있다. 불암산은 천보산(天寶山) 또는 필암산(筆岩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불암산이란 이름은 산 정상의 생김새가 송낙(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삿갓)을 쓰고 있는 부처님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불암사 일주문>

 

불암사 입구에 이르니 따스한 해살이 내리 쬐던 이른 봄의 어느 날 산을 오를 때 들었던 그 노승의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려온다. 느리고 가라앉은 듯한 목소리가 심적 안정을 중요시하는 불교의 가르침에 꽤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절 옆으로 난 등산길을 따라 석천암 쪽으로 올라간다. 불암산의 대표적인 사찰인 불암사는 신라 경문왕 때 지증국사가 창건한 사찰이라고 한다.

 

<석천암 암각 불상>

 

불암사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여 정도의 길이지만 이쪽에서 오를 때 마주치는 불암산 정상은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길을 막고 있는 형상이다. 더러 이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올 때마다 이 바위를 오르기엔 내게 다소 무리란 걸 느끼게 한다. 이 바위 앞에만 서면 '조금만 둘러 가면 될 일을 괜히 모험하다가는 멀쩡한 몸을 만신창으로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불암산 암릉길>

 

산기슭을 돌아 불암산 주능선으로 올라선다. 불암산 정상부의 바위구간에 해당하는 이 주능선은 상계동과 남양주시의 경계를 이루며 다소 높게 솟아있어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는 곳이기도 하다. 이젠 가을도 다 지나갔는지 제법 차가운 바람이 뺨을 때리고 지나간다.

 

<불암산 정상부의 암릉>

 

불암산 정상의 바위산은 미끈하고 거대한 몸집을 정상부로 우뚝 세워 올리면서 육중한 무게감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한다. 바위산이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는 것은 기기묘묘한 바위들의 형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필시 엄청난 크기의 바위들에게서 느끼는 중후함과 담대함에 넋을 빼앗기게 되는 탓이리라! 그 속에는 보이진 않지만 용솟음치는 힘이 있고, 세상잡사에 얽매이지 않는 고고함이 있다. 또한 바위산은 다소 위험하긴 하지만 산 위에 올랐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육산(肉山)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뿐만 아니라 사방이 모두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더 넓은 공간의 후련함을 느낄 수 있다.

 

<불암산 정상부의 암벽>

 

<멧돼지 형상의 불암산 괴석>

 

태극기 휘날리는 정상을 내려와서 잠시 바위 귀퉁이에 앉아 가져온 고구마를 꺼내 씹어본다. 전에는 군고구마나 삶은 고구마를 가져오곤 했는데 앞으로는 혼자 다닐 때는 생고구마를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산 속에선 아무래도 날것이 더 좋을 것 같고 또 생고구마가 익힌 고구마보다 건강에도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불암산 정상에서>

 

홀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산 아래를 내려다보면 괜스레 독야청청(獨也靑靑) 고독에 젖어든다. 하지만 이런 고독도 때로는 대단한 희열(喜悅)로 느껴질 때가 있다. 마치 염원하던 일을 이루었거나, 아니면 스스로 맑고 고결한 인생을 갈고 닦는 사람이 되어 숫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지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는 그런 희열을 ......

 

<불암산 암벽>

 

바윗길을 천천히 내려와서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를 거쳐 중계동 방향의 주능선 길로 향한다. 이 길은 길 양쪽으로 적당한 크기의 소나무들이 자라있어 햇볕을 가려주기도 하지만 사람들도 그다지 많이 다니지 않아 조용하고 소박한 느낌이 드는 내가 걷고 싶은 그런 길이기도 하다. 조용하게 가라앉은 차가운 늦가을의 날씨는 혼자만의 독백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랄까? 이상하게도 이 길로 들어서기만 하면 혼자만의 독백을 주고받으며 마음이 착잡하게 가라앉게 되는, 그런 여성적인 섬세함을 가진 길이란 생각이 든다.

<헬기장이 있는 봉우리>

 

<불암산 소나무 숲길>

 

능선 중간에서 컵라면으로 적당히 점심을 해결하고 잠시 망설이다가 불암동 방향으로 내려온다. 아직 이 길로 내려가 본 적은 없지만 길이 있고 방향을 아니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길의 끝은 군부대 유격훈련장과 연결되면서 불암동 마을 어귀로 떨어진다. 배밭이 많아 아직 시골냄새가 남아있지만 필시 여기도 조만간엔 개발의 바람이 불어오고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마을로 들어서면서 오늘의 불암산 산행을 마감한다. 정상부의 거대한 암봉과 하산길의 아기자기한 소나무 숲길이 잘 어우러진 불암산은 남성적 중후함과 여성적 섬세함이 잘 조화된 산이란 느낌이 든다.

 

<불암산 등산지도>

 

 

2005. 11. 19  불암산을 다녀와서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