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산(2005.09.10)
대금산(2005. 9. 10)
오전 9시 30분 딸아이들 아침 준비를 마무리하고 차를 몰아 대금산을 향한다. 산행이 있는 날이면 늘 아침부터 집사람의 일손은 분주하다. 남자인 나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별 준비할 일이 없지만 아침식사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몸단장까지 모두 준비해야 하는 집사람은 늘 바쁘기만 하다. 조금 지루하긴 하지만 집사람의 준비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게 이젠 습관이 되어버렸다.
청평을 지나 가평 조금 못 미친 곳인 상색에서 좌회전하여 두밀리 방향으로 차를 몰아간다. 주변에는 가을의 전령 코스모스가 길을 따라 한들거리며 아름다운 몸짓을 한다. 여린 모습에서 나도 몰래 가느다란 서정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이젠 나이로 보아도 한물간 청춘이지만 이런 풍경을 보면 어렸을 때 가졌던 감정이 절로 떠오르는 것은 나이에 관계없이 다 똑 같은가 보다.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순수에 가득한 그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두밀리 버스종점에 차를 세우고 그 앞에 세워진 등산안내도를 한번 본 다음 오른쪽 언덕길을 따라 올라간다. 길가의 여남은 평됨직한 논에는 잘 익은 벼이삭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젠 결실의 계절이다. 동네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포장된 길인 듯 한 한두 대의 자동차가 겨우 비껴갈 수 있는 길을 따라 5분 정도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느 길로 가도 상관없지만 왼쪽은 밤벌을 거쳐 두밀리고개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광산터와 잣나무 숲을 경유하여 동릉으로 오르는 길이다. 오른쪽 동릉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이젠 가을이라지만 아직도 9월 초순이라 그런지 잡풀 사이로 내리쬐는 햇살은 여전히 따갑기만 하다. 오늘따라 마누라가 조금씩 쳐지기 시작하는 게 영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모른 체 하고 그냥 걸어가지만 은근히 답답하다. 잣나무숲 사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안정을 되찾은 후 다시 산을 오른다.
길은 다시 두갈래로 갈린다. 대금산 정상 1.4Km와 정상 1.9Km로 표시된 이정표를 보고 1.4Km 방향의 오르막길로 올라간다. 이제야 겨우 산길에 접어든 느낌이다. 호젓한 산길에는 우리 두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듯 하다. 조용하게 둘이서 올라가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길가에는 가을이라 그런지 도토리가 무수히 떨어져있다. 처음에는 심심풀이로 한두 개 주워보던 것이 점차 개수를 더하면서 본격적으로 '도토리 줍기'에 들어갔다. 집사람과 나는 아예 길가에 배낭을 내려놓고 열심히 도토리를 줍는다. '겨울철 다람쥐 먹이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많아 좀 가져가도 다람쥐가 겨울을 지내는 데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한시간 정도 주우니 배낭 하나가 가득 찬다.
대금산 조금 못 미친 곳에는 전망바위가 있다. 아래로는 깎아지른 절벽이지만 여기서 보는 경치는 대단히 훌륭하다. 저 건너편으로 불기산과 청우산의 모습이 한결 돋보이는 자리다. 물론 정상에 올라가도 볼 수 있는 모습이긴 하지만
대금산 정상엔 조그만 표지석이 하나 세워져있고 서쪽 끝에는 깎아지른 절벽이다. 절벽 위에 서면 주변을 잘 관찰할 수 있다. 산아래 현리의 마을과 함께 북쪽으로는 약수봉과 매봉의 모습이, 남쪽으론 불기산과 청우산이, 그리고 더 멀리로는 화야산의 모습까지도 볼 수 있다.
정상 주변에 키를 넘기며 자란 억새풀을 헤집고 산을 내려간다. 청우산이라 표시된 이정표를 따라 1~2백미터 가량 내려오면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길을 잘 알 수 없어 무조건 방향감각에 의지하여 두밀리 방향으로 내려온다. 어느 산악회에서 단체로 오늘 대금산에서 청우산까지 연결산행을 하는 것인지 두어명의 산꾼들이 지나가길래 길을 물어보았지만 잘 모르긴 마찬가지다.
두밀리 방향의 하산길은 매우 경사가 가팔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낭떠러지 밑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그런 길은 대략 30~40분 가량 조심스럽게 내려오면 등산로는 끝이 나고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 이젠 길은 편안해졌지만 임도는 어쩐지 재미가 없다. 길가에는 몇 그루의 돌복숭아 나무가 열매를 잔뜩 달고 있다. 역시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산 속의 복숭아나무까지도 이렇게 결실에 충실하니.......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는 밤나무가 서너 그루 서있고 그 주변엔 밤이 흐드러지게 떨어져있다. '아니! 이게 왠 떡이냐!' 하며 밤나무 밭에 들어가 신나게 밤을 줍는다. 굳이 밤송이를 깔 필요가 없을 정도로 주변엔 밤이 많이 떨어져있다. 밤이 너무 많아 배낭 속에 들어있던 돌복숭아를 모두 버리고 그 자리를 밤으로 대신 채웠다. 집사람과 내 배낭 속에는 온통 밤으로 가득 찼다. 배낭이 너무 무거워 어깨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집사람은 밤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고 계속 밤나무밭을 뒤지고 있다. 산 속의 밤은 먼저 주워 가는 사람이 임자라지만 은근히 걱정도 된다. 혹시나 주인이 있는 밤나무인지도 모른다.
어깨가 아플 정도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길을 따라 다시 윗두밀 버스종점에 도착한 후 개울에서 잠시 세수를 하고 차를 몰아 서울로 향한다. 집에 돌아와 주운 밤과 도토리를 펼쳐보니 정말 생각 밖으로 많았다. 밤새도록 밤을 구워 먹으며 도토리 껍질을 까느라고 허리가 아프지만 오늘의 수확을 바라보는 마음은 마냥 즐겁기만 하다.
<대금산에서 주운 밤과 도토리를 집에 와서 정리한 모습>
2005. 9. 10 대금산을 다녀와서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