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산 산행일기(2005.7.30)
연인산 산행일기(2005. 7. 30)
연인산(1,068m)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백둔리와 하면 상판리의 경계를 이루는 산이다. 명지산(1,167m) 남봉인 1,199m봉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리는 능선은 아재비고개에서 잠시 가라앉았다가 다시 서서히 올라가며 그 정점을 이룬 봉우리가 바로 연인산이다.
연인산(戀人山)은 명지산의 명성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다가 1995년부터 철쭉이 자생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1999년 5월 16일 가평군 주관으로 처음 철쭉제를 연 후 해마다 5월이면 철쭉제를 개최하게 되면서 점점 등산애호가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산이다. 원래는 우목봉 또는 월출산으로 불리어 왔으나 1999년 3월 15일 가평군이 지명을 공모하여 「사랑이 이루어지는 곳」 이란 의미에서 이 산의 이름을 연인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또한 연인산 남서쪽 2km 거리의 전패봉으로 불리던 906m봉과 전패고개는 혐오지명이라 하여 각각 우정봉과 우정고개로, 전패고개 남쪽 매봉(929m)에서 동쪽으로 가지를 쳐나간 능선상의 칼봉산(899m)은 칼봉으로 개명하고, 417m봉에는 선인봉으로, 연인산 정상에서 동쪽 멀리 가평천 방면으로 이어지는 능선 상의 705m봉은 장수봉으로 새로 이름을 붙이는 한편, 구나무산(859m)은 노적봉으로, 연인산 정상에서 승안리로 패어져 내린 용추계곡도 연인골로 각각 그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원래 사람에겐 참여욕구라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참여를 통해 자신의 역량을 인정받고 또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기도 한다. 특히 부부간에 있어서는 이런 욕구가 더욱 강하여 가정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할 때는 서로 충분한 상의를 거쳐야 하며 만약 이런 상의 없이 어느 일방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 처리해버리면 상대방은 자존심이 크게 상하거나 소외감을 느껴 부부간의 애정에 금이 갈 수도 있다. 이처럼 부부간의 상의는 매우 중요한 일이면서도 때로는 서로 다른 견해의 대립으로 갈등만 더욱 증폭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갈등의 해결을 위해서는 가끔 서로 그 일에서 한 걸음씩 떨어져 제3자의 시각으로 사물을 다시 보아야 할 필요도 있다.
연인산(戀人山) - 「사랑이 이루어지는 산」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산」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 산을 찾은 이유중의 하나도 그 이름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도 살다보니 종종 다투기도 하고 의견대립 또한 적지 않았다. 나이 50십이 넘은 지금도 심심찮게 촉각을 곤두세우며 기(氣)싸움을 벌리기도 한다. 그렇게 서로 으르렁거리기도 하고 또 히히거리기도 하는 게 부부인가 보다. 오늘 이 산에서 우리 부부가 20년 지기 연인이 되어 서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다정한 시간을 가지는 그런 산행이 되어야 할텐데.......
가평 백둔리의 연인산 입구를 지나 등산 기점인 장수골의 공터에 차를 세워두고 임도를 따라 장수고개로 향한다. 고갯길 양옆을 가득 메운 나무들의 훤칠한 키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서울 근교에 이처럼 크고 울창한 삼림이 있다니! 길게 뻗어 오른 잣나무, 소나무, 자작나무, 참나무 등의 모습도 시원스럽지만 그 주변을 빼곡이 메운 크고 작은 철쭉이며 단풍나무, 그리고 넝쿨식물들이 온산을 초록의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다.
입구에서 대략 한시간 정도 걸으면 장수고개에 도착한다. 고개 위에는 임도를 따라 마일리로 가는 방향과 장수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표시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오늘 산행코스는 장수능선을 타고 장수봉을 거쳐 연인산 정상에 오른 다음 다시 소망능선을 타고 장수골로 내려올 심산이다.
장수능선 입구에 들어서니 짙은 녹음으로 인해 주변이 다소 어두워진 느낌이다. 고갯길을 올라오며 보았던 그 키 큰 나무들 사이로 들어선 것이다. 시원스럽게 뻗어 오른 나뭇가지가 등산로 사이를 요리조리 비켜가며 운치 있게 이리저리 굽은 길고 자연스러운 행렬을 만들어낸다. 높은 나뭇가지 끝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그렇게 맑아 보일 수가 없다. 간간이 능선 왼편의 비탈에서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와 별 더위를 느끼지 않고 편안한 기분으로 산을 오를 수 있으니 더욱 금상첨화라고 할까?
송학봉을 지나 장수봉을 향한다. 장수능선은 대체로 완만한 능선이라 편안하게 산행을 할 수 있는 길이다. 굳이 등산복 차림이 아니더라도 연인들이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듯 그렇게 걸을 수 있는 능선이다. 우리 부부도 서로 손을 잡고 아무도 없는 이 길을 연인처럼 걷고 있다. 20년간의 희비 속에 미운 정 고운 정이 마음 곳곳에 스며있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할 부부인 것이다. 때때로 나무그루터기에 앉아 간식도 나눠먹으며 쉬엄쉬엄 걸어간다. 태평스런 노인네의 걸음걸이가 이런 걸음이라고 해야 할까? 무엇 하나 바쁠 게 없다.
장수능선은 가끔 자그마한 수풀더미 사이를 지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체가 거의 비슷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키 큰 나무에 짙은 그늘, 완만하고 편안해 보이는 산길, 때때로 왼쪽의 산비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등등 이런 길은 연인산 정상에 이르기까지 거의 비슷하다. 간간이 작은 꽃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것 외에는 마주치는 사람도 드문 조용하고 호젓한 산길이다.
장수봉을 거쳐 소망능선길과 합쳐지는 지점을 지나 정상을 향한다. 정상 조금 아래에 있는 장수샘에서 시원한 약숫물 한바가지를 들이킨 후 산을 향하는데 저 멀리서 서서히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짙은 안개가 깔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한줄기 하려나 보다........' 마음이 조급해진 탓일까 10분이면 도착할 것 같던 정상이 자꾸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한다.
연인산 정상 주변에는 온통 운무가 깔려있다. 연인산 정상은 사방이 확 트여있고 또 주변에서는 꽤나 높은 산들이 많아 전망이 괜찮은 곳인데 지금은 운무 때문에 주변을 분간하기도 어렵다. 정상에는 「사랑과 소망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새겨진 비석 위에 「연인산」이란 붉은 글자가 새겨진 둥그스름한 정상석이 올려져 있다. 이름만큼이나 아름답고 소망스러운 정상석이다. 그 옆에는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 동서남북의 방위와 주요 지점을 표시한 방위석 한 개가 놓여져 있다.
산정에 짙게 깔린 구름이 천둥소리와 함께 갑자기 비가 되어 떨어진다. '괜찮겠지.......' 하며 지나칠 생각이었으나 갈수록 빗줄기가 굵고 거칠어져 우의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시간도 꽤나 되어 정상에서 점심이라도 먹고 천천히 하산할 생각이었으나 비 때문에 우선 내려가는 일이 더 급하다는 생각만 든다. 하산길을 재촉하여 소망능선으로 들어선다.
소망능선은 장수능선과는 달리 경사가 급하다. 시종일관 급경사를 내려와야만 하는데 비로 인해 미끄러지기 안성맞춤이다. 다행히 비는 금방 멎고 다시 날씨가 개어 햇빛이 나왔지만 숲 속은 여전히 어두컴컴하다. 그만큼 나무숲이 짙기 때문이리라! 대략 1시간 30분 정도 걸으니 아랫마을의 집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 아래로 내려와 장수골에 이르니 계곡 물이 '콸콸'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흘러내린다. 며칠 전 호우로 인해 물이 불어난 때문이리라. 여름 산행의 별미는 뭐니뭐니해도 하산길에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고 세수도 하면서 산행의 피로를 푸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 부부도 사람이 없는 계곡가에 앉아 몸도 씻고 더러워진 신발도 깨끗이 정리한다.
지친 몸과 마음을 계곡물에 깨끗이 정리하고 계곡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사람의 옆모습을 쳐다본다. 잠시 피로의 흔적을 씻어내긴 했지만 세월과 더불어 새겨진 인생사의 흔적은 씻어내기 어려운가 보다. 비록 신혼시절 보던 맑고 투명한 얼굴은 아니지만 오늘 이 연인산에서 20년 지기 연인과 함께 한 산행이 헛되지는 않았던지 바가지만 긁던 그 얼굴에도 만족스런 미소가 가득하다.
<등산지도 http://www.koreasan.com/data/m/gap1.jpg>
2005. 7. 30 연인산을 다녀와서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