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지방산행

노인봉 산행일기(2005.6.26)

OHO 2005. 6. 27. 20:27

노인봉 산행일기(2005. 6. 26)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하는 산행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친구들과 어울려 곧잘 함께 산을 찾곤 했는데 연초에 작은 일로 의견충돌을 일으킨 후 삐쳤는지 한동안 따라 나서질 않는다. 남자들은 작심삼일이라 왠만한 일에도 삼일을 넘기지 못하고 대부분 ‘그래 그래’ 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지만, 여자들은 그렇지 못한지 참 끈질기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내 집사람도 그런 사람중의 한사람이리라. 집사람의 체력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이런 기회에 장거리 산행도 한번 같이 가보고 하여 부부간의 화합도 돈독히 하고, 또 좀더 폭넓은 경험과 생각을 갖도록 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새벽 4시도 채 되지 않아 집사람을 깨운다. 아무래도 산악회를 따라 장거리 등산을 함께 하는 것은 처음이고, 또 두 사람이 같이 나갈 채비를 하려면 좀 서두르는 게 좋을 것 같다. 산행준비와 아이들 아침 준비, 몸단장 등 여자들은 신경 써야 할 것이 많다.

 

아침 6시. 아침운동하러 가는 기분으로 집을 나선다. 다소 잠이 모자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집사람과 함께 할 등산을 생각하며 기분 좋게 배낭을 짊어진다. 슬며시 아내의 손목도 잡아주며 그 간 못해준 애정 표시도 은연중에 해준다. 어떻게든 잘 꼬셔서 기분 좋게 다녀오는 것이 이번 산행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다.

 

아침 7시. 동대문주차장을 출발한 버스는 영동고속도로 진부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10시 20분에 산행들머리인 진고개에 닿았다. 노인봉으로 가는 가장 가까운 등산로가 진고개다. 진고개는 연곡면 삼산 4리와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사이에 있는 해발 970m의 고개로 이 고개는 비만 오면 땅이 질어지기 때문에 진고개로 불린다고 한다. 두어대의 다른 산악회 버스 사이를 지나 매표소를 통과하니 저 앞쪽 파릇파릇한 녹색 수풀 사이로 노인봉 가는 길이 황토빛 알몸을 드러낸 채 꾸불꾸불 이어지고, 그 길 위로는 몇몇 등산객들의 행렬이 줄줄이 이어진다.

 

처음 30∼40분간은 꽤나 경사가 급해 다소 힘이 들었지만 길은 금방 평평한 길로 바뀌면서 거의 평길 수준으로 이어진다. 진고개가 해발 970미터에 위치하고 노인봉 정상이 1,338미터이니 초기 경사구간만 잘 넘기면 어려울 게 없는 산행이라는 생각에 서두를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천천히 걸어간다. 간간이 집사람을 돌아보니 역시 오랜만의 등산이라 조금은 힘들어하는 것 같다. 하지만 오늘 코스는 노인봉이라는 글자 그대로 노인등산 스타일로 천천히 잘 끌고만 가면 별 탈없으리란 생각이 든다. 오르막은 1시간 30분 정도면 끝나고, 하산길이 좀 길어 3시간 30분 내지 4시간 정도라고 한다.

 


<노인봉을 오르며>

 

사방은 울창한 참나무 숲길이다. 짙은 녹음에 가려 햇볕 걱정은 할 필요도 없고 주변 분위기도 시원한 느낌이 나는 그런 산길을 조금 헉헉대며 올라갈 뿐이다. 노인봉은 많은 등산객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탓인지 오늘도 꽤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노인봉을 오르며>

 

중간 지점을 조금 지나 산악회장이 표시해 둔 옆길로 들어서니 사람들이 좀 적어지긴 했지만 길이 좀 애매하다. 이 산악회 회장님은 곧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외딴길로 안내하는 버릇이 있는가 보다. 자신의 말로는 자기가 산에 미쳐서 그러니 이해해달라고 한다.

 

큰길을 두고 좁은 숲길 사이를 헤집고 한참을 걸어가니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리는 게 아마 정상이 가까웠는가 보다. 갑자기 앞쪽에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옆으로 노인봉의 바위무더기가 나타난다. 기대했던 것보다는 작은 봉우리지만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정상비 주변을 모여든다.

 


<정상비 옆에서>

 

 


<노인봉 정상비에서>

 

가까스로 우리도 기념사진 한 장씩 찍고 대충 주변을 살펴본다. 저 앞쪽에 보이는 것은 황병산인가 보다. 부드러운 곡선 위로 듬직하게 솟은 것이 은근한 매력을 풍긴다. 보다 뒤쪽으로는 매봉의 모습도 구름처럼 흐릿하게 떠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이것저것 자세히 구경할 겨를도 없이 봉우리를 내려온다. 좁은 길 위에는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노인봉에서>

 

 


<정상에서>

 

노인봉은 연곡면 삼산리와 평창군 도암면 병내리 사이에 있는 높이 1,338m의 산이다. 노인봉은 소금강의 주봉(主峰)으로 지명에 얽힌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심메마니가 이곳에 심메(山蔘)를 캐려 왔다가 선잠이 들었는데, 꿈에 노인이 나타나 이 부근에 무밭이 있으니 거기에 가서 무를 캐라하고 사라졌다. 심메마니가 깨어 보니 꿈이었다. 꿈이 하도 이상해 노인이 가르쳐 준 곳에 가보니 심메가 많이 있어 심메를 캤다고 한다. 꿈에 머리가 흰 노인이 나타나 심메가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고 하여 노인봉(老人峰)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산 정상이 노인의 모습과 닮았다고 하여 노인봉이라 한다는 말도 있다.)

 


<황병산>

 

 


<노인봉 대피소를 지나서>

 

 


<노인봉 대피소를 지나서>

 

하산길은 노인봉 대피소를 거쳐 U턴을 하듯이 걷다보면 별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소금강 방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대략 한시간을 조금 넘게 내려오니 낙영폭포가 보인다. 폭포수의 양이 그리 많지 않아 실감은 덜 하지만 만약 비온 후라면 꽤나 볼만한 구경거리가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폭포 주변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간식도 먹는다. 아무래도 오늘 집사람이 좀 힘들어하는 것 같다. 얼굴 색이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시간이 허락하는 한 충분히 휴식과 기분 전환을 하도록 해줘야 할 텐데 ........

 


<낙영폭포 앞에서>

 

노인봉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역시 소금강이라 할 것이다. 소금강은 원래 청학계곡(靑鶴溪谷)이라 불렸는데 율곡 이이선생님이 저서 「청학산기(靑鶴山記)」에서 소금강이란 명칭을 처음 쓰면서 소금강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소금강 입구의 표지석에 새겨진 小金剛이란 글씨도 율곡선생님이 직접 쓴 글이라고 한다. 계곡 입구의 무릉계를 시작으로 십자소, 금강사, 식당암, 청심폭, 세심폭, 구룡폭, 만물상, 구곡담, 희암대, 선녀탕, 백운대, 마의태자의 설화가 얽혀 있는 아미산성, 학유대, 만물상을 거쳐 일월암에 이르는 5킬로미터의 구간이 소금강의 백미라고 한다.

 


<광폭 앞에서>

 

 


<광폭>

 

낙영폭포를 지나 광폭, 삼폭을 거쳐 만물상에 이르니 주변 봉우리가 온통 기암괴석의 절경이다. 특히 해발 440미터에 위치하여 마귀를 �는 향로봉의 향불탑과, 일월(日月)이 숨바꼭질하며 넘나든다는 일월암(日月岩), 시녀(詩女)가 풍운을 음미하려고 울린 음률이 천년을 두고 끊이지 않는다는 탄금대(彈琴臺) 등이 함께 모여 만물의 형상을 이루었다는 만물상의 암봉도 기이하지만 그 주변의 다른 크고 작은 봉우리와 바위들이 기기묘묘한 형태로 어우러져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감탄이 터져 나오게 한다. 또한 그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과 오랜 세월동안 그 물길을 만들어내며 갈고 닦여 반들거리는 크고 작은 회갈색의 화강암들도 볼수록 아름답다. 과연 소금강이란 이름이 아깝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산수의 극치'라고 표현해도 좋을 그런 풍경들이 계곡길을 따라 연이어 펼쳐진다.

 


<소금강 계곡>

 

 


<소금강 계곡을 걸으며>

 

 


<귀면암>

 

 


<만물상 주변의 봉우리들>

 

 


<만물상 주변의 기암>

 

 


<만물상>

 

 


<만물상>

 

 


<만물상 주변에서>

 

 


<만물상 주변에서>

 

 


<만물상 주변에서>

 

 


<만물상을 배경으로>

 

 


<만물상 앞 계곡을 바라보며>

 

 


<소금강 계곡길>

 

 


<다리 위에서>

 

 


<소금강 계곡>

 

구룡폭포에 이르니 집사람도 어지간히 지쳐가는 기색이다. 얼굴에 피로의 기색이 완연하다. 산행은 거의 다 끝나가지만 그래도 은근히 걱정이다. 대략 30분의 여유는 충분한 것 같아 아래 계곡으로 내려가 계곡물에 발 담그고 세수도 하며 남은 간식을 먹는다. 산중에서의 피로를 푸는 데는 계곡물에 발 담그는 것도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넓고 불그스레한 암반 위를 흐르는 물이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구룡폭포>

 

 


<구룡폭포 앞에서>

 

 


<구룡폭포 주변의 절경>

 

구룡폭을 지나 다시 발걸음을 재촉한다. 어지간히 걸었나 보다. 어느 듯 금강사가 보이고 그 옆에는 소금강(小金剛)과 이릉계(二能契)라고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하나 보인다. 아마 율곡선생님의 친필이라고 하는 소금강 표석인가 보다. 아내의 지친 모습을 보고 이젠 산행이 다 끝났음 대한 안도의 숨을 쉰다. 오랫동안 산행을 같이 하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그런 대로 잘 버텨주었다는 생각이 들어 고마울 따름이다.

 


<율곡 선생님의 친필 소금강>

 

소금강 관리사무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니 한 20분 가량의 시간이 남았다. 그런데 오늘따라 회장님이 예정에도 없는 코스로 들어가서 지각하는 바람에 무려 한시간이나 지난 후에 버스는 출발할 수 있었다. 64세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왕성한 의욕 탓이라고 하며 양해를 구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는 억수같은 비가 내린다. 오늘 비소식이 있다고 했는데 모든 일정이 끝난 시간에 내리니 다행스럽다. 출발시간이 늦은 탓인지 고속도로는 정체를 거듭하다 11시 10분경에야 겨우 지하철 7호선 논현역 앞에 내려 허겁지겁 전철로 갈아타고 집에 도착하니 12시가 넘어 버렸다.

 

힘들었지만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멀리 강원도까지 가서 산행을 같이 하다보니 다시 부부간의 정을 되찾게 된 것 같아 그런대로 괜찮은 산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등산지도 - http://www.koreasan.com/data/m/20050602155311_sog7.jpg>

 


2005. 6. 26 오대산 노인봉을 다녀와서
오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