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부여백제문화유적(충남 부여, 2021. 11. 12)

OHO 2022. 10. 1. 15:02

부여 백제문화유적(충남 부여, 2021. 11. 12)

 

좀 늦은 듯하지만 이맘때 쯤 단풍도 구경하며 걷기 좋은 곳으로 <부여 사비길>이 뉴스에 소개되었기에 가 보았다. 원래는 부여시외버스터미널, 궁남지, 능산리고분군, 정림사지, 부소산성(낙화암 제외), 부여시외버스터미널로 돌아오는 총 13km, 6시간의 걷기 코스인데 현지에 도착하니 가랑비가 내려서 걷기 보다는 그냥 문화재 관람을 하기로 했다.

 

나름 좋은 점도 있었는데, <부여 사비길>의 경우 궁남지를 제외하고는 문화재가 있는 안쪽으로는 가지 않고 바깥쪽 길만 따라 걷기 때문에 문화재를 관람할 기회가 거의 없는데 반해, 문화재 관람은 매표소 안쪽의 문화재를 직접 구경하는 것이기에 부여의 문화유적을 제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부여 사비길> 걷기를 했다면 능산리고분군과 정림사지5층석탑, 부소산성 내부의 길과 낙화암, 고란사 등도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을텐데 문화재 관람으로 방향을 바꿨기 때문에 이런 문화재도 구경하고 여유 있게 점심을 먹을 수도 있었고, 부소산성 등에서는 걷는 거리도 꽤 많아 총 5시간 동안 10km 정도를 걸었으니 어느 정도 하루 분량의 운동도 한 셈이다.

 

궁남지, 능산리고분군, 정림사지까지는 가랑비를 맞으며 구경했지만 정림사지 구경후 점심을 먹고 부소산성 앞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그치고 하늘도 맑게 드러났다. 구경한 순서대로 대략 정리하면 아래와 같고 각각의 장소마다 충분한 주차장이 완비되어 있어 차로 이동하며 구경하기도 좋았다. 주차는 모두 무료다

 

- 궁남지

- 능산리고분군

- 정림사지(5층 석탑 등)

- 부소산성(삼충사, 영일대, 낙화암, 고란사, 사자루 등 포함)

 

 

갔다온 날 - 2021. 11. 12

오호

 

 

부여 궁남지(扶餘 宮南池)는 부여 시가지 남쪽에 위치한 별궁에 딸린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무왕 35(634) 궁 남쪽에 연못을 파고 20여 리나 되는 긴 수로로 물을 끌어들였으며 물가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고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중국 전설에 나오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선산(方丈仙山)을 본떴다는 기록이 있다(이하 생략)

 

 

궁남지 안내도와 대표 식물

 

 

쉼터

 

 

분수를 내뿜고 있는 궁남지와 호수 가운데의 포룡정(抱龍亭)

 

 

서동왕자와 선화공주 사랑 이야기 - 서동은 백제 무왕의 아명(兒名)이다. 어느 날 어명을 받들어 마 장수로 변장하여 신라를 염탐하던 중 신라 26대 진평왕의 세째 딸 선화공주와 마주쳐 서로 사랑하게 되었는데 신분이 달라 결혼할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서동요를 지어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시켜 노래를 부르게 하니 진평왕은 노하여 선화공주를 추방하였고 서동은 선화공주를 데려와 같이 살게 되었다는 내용이다(궁남지 주변은 서동공원이기 때문에 이 안내판이 있는 것 같다)

 

 

포룡정(抱龍亭)

 

 

궁남지 외곽의 버드나무 - 가랑비가 내려 사진이 매우 흐리다

 

 

천련(千蓮)의 사랑 - 동전을 던져 인형 앞에 있는 연꽃 모양의 바구니 안에 떨어지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적혀 있다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능산리고분군

 

 

능산리 1호고분 - 이곳엔 7호까지 있다

 

 

백제금동대향로가 여기서 400m 앞에서 출토되었다고 길바닥에 기록되어 있다

 

 

의자왕(우측 뒤)과 태자 부여융(좌측 앞)의 무덤

 

 

오른쪽 비석에 百濟國扶餘隆壇碑(백제국부여융단비)라고 기록되어 있다

 

 

百濟國義慈大王壇碑(백제국 의자대왕 단비)

 

 

의자왕의 생애가 적힌 비석

 

 

태자 부여융의 생애가 적힌 비석

 

 

능산리벽화고분 모형

 

물고기 벽화

 

 

천정 벽화

 

 

백제 금동 대향로가 발굴된 곳

 

 

능산리고분군 아트 뮤지엄

 

 

정림사지박물관 입간판

 

 

정림사지(定林寺址)는 백제사찰을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중 하나로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사비시대(538~660)의 중심 사찰터 이다(이하 생략)

 

 

비석에 사비. 빛의 화원 이라고 적혀있다

 

 

연잎

 

 

정림사지 5층석탑

 

 

부처의 모습 같은데 5층석탑 뒷쪽 건물 안에 큰 바위로 세워 올린 것이다

 

 

부소산성 입구

 

 

扶蘇山門(부소산문)

 

 

부소산 산책코스 안내판

 

 

부여 부소산성은 백제시대의 중심을 이룬 산성으로 도성을 방어하는 핵심시설이며, 백제가 사비로 도읍을 옮긴 백제 성왕 16(538) 이전에 이미 축조되었다. (중략) 대부분 흙으로 다진 토성으로 평상시에는 궁궐의 후원으로 이용되었으며 유사시에는 도성의 방어 거점으로 사용되었다

 

 

삼충사(三忠祠) - 백제의 3대 충신인 성충, 홍수, 계백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성충은 백제 의자왕 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기 위해 애쓰다가 옥중에서 단식으로 숨졌고, 홍수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백제의 요충지인 백강,탄현을 방어하고자 한 충신이나 귀족들의 반대로 지키지 못했고, 계백은 5천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황산벌에서 김유신장군의 5만 대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9~10월 개최되는 백제문화제 때 세 충신에게 올리는 삼충제를 지내고 있다

 

 

의열문(義烈門)

 

 

삼충사(三忠祠)

 

 

백제충신 좌평 홍수공 상

 

 

백제충신 좌평 성충공 상

 

 

백제충신 계백장군상

 

 

영일루(迎日樓) 가는 길

 

 

영일루

 

 

영일루는 계룡산 연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곳으로 원래는 영일대(迎日臺)가 있던 곳인데 현재의 건물은 고종 때 홍산 관아의 정문인 집홍루를 1964년에 이곳으로 옮겨 와 영일대로 부른다고 한다

 

 

영일대 안쪽에 걸린 현판으로 전각체로 쓰여 자세히는 모르지만 扶蘇出日(부소출일) 인 듯하다

 

 

백화정(百花亭) - 백화정은 낙화암 위에 세위진 정자다

 

 

낙화암 아랫쪽 백마강 전망대

 

 

백마강

 

 

낙화암은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향해 우뚝 솟은 큰 바위이다. 바위는 80m 정도 높이의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강물에 이르러 한번 꺾인 단이 있다. 이 단에 이르러 송시열이 쓴 落花岩(낙화암)이라고 쓴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가 멸망할 때 궁인들이 화를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남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이곳에서 몸을 던져 순절하여 타사암(墮死岩)이라고 한다. 훗날 사람들이 궁인들을 꽃에 비유하여 이곳을 낙화암이라고 불렀다

 

 

백마강

 

 

사진으로 본 낙화암 - 조금 왼쪽에 수직으로 검게 보이는 곳이 낙화암 이다

 

 

백화정(百花亭)은 낙화암 위에 서있는 정자다. 나당연합군으로 사비성이 함락될 때 이곳에서 순절한 궁인들의 넋을 추모하기 위해 1929년 세웠다고 한다. 백화정이란 이름은 중국 북송시대의 시인 소동파가 해주에 귀양갔을 때 성밖의 호수를 보고 지은 강금수사백화주(江錦水射百花州)라는 시에서 유래한다.

 

 

고란사 유람선선착장

 

 

고란사

 

 

고란사

 

 

고란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및 보살 좌상에 관한 안내문

 

 

극락보전

 

 

고란사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유람선

 

 

삼성각

 

 

거북 모양의 바위인데 구체적인 건 모름

 

 

보리수잎 모양의 소원지

 

 

고란사가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수 없으며 단지 백제 아신왕 때 혜인대사가 세웠다는 설과 백제의 사비성이 함락되자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은 궁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고려 현종 때 세웠다는 설이 전한다고 한다

 

 

부소산 정상의 사자루 포토존

 

 

사자루(泗泚樓)는 부소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정자다. 사자루란 글씨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의 글씨고, 백마강 쪽으로는 김규진이 쓴 百馬長江(백마장강)이란 현판이 있다

 

 

사자루

 

 

백마강 방향의 백마장강이라고 쓰여진 현판

 

 

부소산성 옛 출입구

 

 

부소갤러리 입구

 

 

부소산성 입구 잔디정원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