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일폭포(쌍계사에서 왕복 4.6km, 2 시간 소요)는 별도로 시간을 추가하여 가든지, 아니면 쌍계사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고 쌍계사에서 불일폭포를 다녀와서 십리벚꽃길은 되돌아오는 길만 화개장터까지 걸어서 오는 방법이 있음
*화개장터주차장 :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725 공영주차장
2. 후기
예년엔 4월 초순에 벚꽂이 절정을 이루곤 했는데 금년엔 날씨가 좀 따뜻해서 그런지 4월 1일 임에도 벌써 벚꽃이 거의 다 지고 없었다. 듬성듬성 푸른잎과 함께 섞인 벚꽃은 아무래도 절정의 화려함이 떨어지는 데다 코로나로 벚꽃축제까지 열리지 않으니 찾는 사람도 거의 없고 이따금 자동차만 오가는 쌍계사 벚꽃십리길은 기대와 흥분에 들뜬 그런 "걷기 좋은 길"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튼, 화개장터를 나와 잠시 남도대교를 걸으며 오랜만에 섬진강도 구경하고 다시 돌아나와 화개천을 옆으로 끼고 쌍계사벚꽃십리길을 걸으니 가끔씩 오가는 차량을 제외하면 사람 구경하기 힘든 길이었고, 하얀 벚꽃이 휘날리는 순백의 아름다움과 감성적 무드를 즐겨보고자 했던 나의 기대를 완전히 무너져 내렸고, 단지 그냥 오늘 하루 왕복 14km 정도의 "건강 찾아 삼만리 길" 걷기 운동이 되어 버렸다.
한 가지 위안되는 건 정말 너무나도 오랜만에 쌍계사 경내 구경도 하고 답답한 집을 떠나 멀고 낯선 곳으로의 탈출을 시도하여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는 것이다. 쌍계사는 20대 초반에 한 번 가보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가지 않았는데 다른 절과는 달리 이름난 사찰의 면모를 제대로 갖추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쌍계사벚꽃십리길 계획표
걷기 지도
트랭글 걷기 궤적
트랭글 운동 정보
출발지 화개장터 인증
화개장터 표석
화개장터 풍경 일부
화개장터 바깥쪽 옛길 그림
조각
화개장터 3.1 운동비
화개장터 입구 삼거리의 "율찰대본산쌍계사" 비
쌍계사십리벚꽃길은 여기서 바로 우회전(사진의 왼쪽편)하여 걸어간다
남도대교
섬진강
남도대교 중앙 전망대에서 본 섬진강 - 여기까지 구경하고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 가야 한다
철쭉
화개장터 앞 쌍계사 비석 바로 옆에 있는 이정표 - 쌍계사까지 7km
화개교
화개교 건너편 화개장터주차장
화개공용버스터미널 - 여기서 버스를 타고 쌍계사까지 갈수도 있다
오른쪽 도로변에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란 팻말이 붙어있다
주요 위치 안내도
화개면 복지회관
도로 양쪽이 벚꽃이지만 이미 꽃은 거의 다 떨어져 버리고 낡은 꽃과 약간의 새순만 보인다
화개중학교
안내판 - 쌍께사까지 4km
벚꽃이 한창 만발할 때면 이곳 주변이 가장 볼만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벚꽃이 거의 다 져 볼 것이 별로 없다
오른쪽 아래는 화개천
현호색
녹차밭
녹차밭
도로 주변에 찻집이 많은데 이곳은 자연산 녹차가 유명하다고 한다
복숭아꽃
매우 오래된 벚나무인 것 같은데 윗부분을 잘라 새가지를 키워 마치 대형 분재를 보는 듯하다
카페 옆 마당에 일렬로 늘어서있는 장독들
그럴싸한 카페
여기도 집 한쪽 옆에 장독들이 줄지어 서있다
큰 나무둥치에 바로 피어난 벚꽃
이정표
쌍계2교
쌍계2교 - 차량을 가지고 왔을 경우 이곳으로 들어간다
하동군 관광안내도
쌍계1교 - 걸어서 들어가는 길
쌍계1교 건너편의 쌍계사 안내판
쌍계1교 위에서 본 화개천
이정표
율찰대본산 쌍계사
도로 한쪽 옆에 산나물을 파는 가게가 몇 집 있다
쌍계사 매표소
삼신산 쌍계사
쌍계사 일주문 -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햔결 같은 마음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쌍계사 일주문은 조선 인조 19년(1641년)에 벽암 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1977년에 고산 화상이 손질하여 고쳤다. 일주문으로서는 드물게 지붕 옆면에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렸다. 건물 높이에 비해 지붕이 넓지만 추녀 밑에 받침 기둥을 세우지 않고, 기둥의 앞뒤에 보조 기둥을 세워 지붕을 안전하게 받치고 있다. 처마는 2단으로 있는 겹처마 이며, 처마를 받치는 기둥머리 장식이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이어서 화려하다. 또 기둥머리 자식 부채가 가늘고 섬세한 점 등 장식성이 강한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의 양식보다는 근대적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리산 쌍계사 - 경상남도 기념물 제 21 호 , 쌍계사는 개산과 창건 둘로 나윈다. 1) 개산은 신라 성덕와 23년(724)에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頭上 두상)을 모시고 와서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는 불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정상을 모신 데서 유래한다. 2) 창건은 진검선사 혜소가 흥덕왕 5년(830)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삼법 화상과 대비 두분이 개산(산문을 열다)한 이곳에 주석하시다가 문성왕 2년(840)에 육조영당 등을 짓고 절을 창건하여 옥천사라 하였다. 그후 성강왕(886-887 재위)이 이웃 고을에도 옥천사가 있고 절 밖에도 두 시내가 만난다 하여 왕명으로 절 이름을 쌍계사라 고쳤다(쌍계사의 개산조사는 삼법화상과 대비 두 분이고, 창간조사는 진강 혜소 선사가 된다) 시산대사가 기록한 중창기(건물을 헐거나 고쳐서 다시 지은 기록)에 따르면 승려 중성과 혜수가 쌍계사를 대대적으로 고쳐서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벽암, 소요, 인계, 범훈, 용담 등이 다시 지었고, 고산화상이 1975년부터 복원하여 고치고 다시 지어 지금과 같은 대가람(가치가 높거나 규모가 큰 절)이 되었다 쌍계사에는 부속 암자로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이 있고, 문화재는 국보 1점, 보물 13건 24점과 경판 3건 368판, 시도지정 유형문화재 10건, 문화재 자료 5건이 있고 경상남도 기념물로는 지리산 쌍계사 일원 21호와 쌍계사 차나무 재배지 61호 등 2건이 있다
금강문
천왕문
쌍계사 구층석탑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 - 이 탑은 고산 화상께서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3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 그리고 전단나무 불상 일존을 모셨다. 이 탑은 국보 제48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유사한 형식으로 불기 2531년(서기 1987년) 1월 3일 시공하여 불기 2534년(서기 1990년) 3월 15일에 완공하였다. 발심 서원한 백창기 부부의 단독 사주로 이뤄졌다
팔영루
불일폭포 가는 길
청학루(靑鶴樓)
팔상전
금당
가장 깊고 높은 곳에 있는 금당에서 인증
금당 안의 모습
금당에서 내려가는 길
동백
쌍계사대웅전 - 쌍계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500호. 평면구조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체적으로 중앙에 비해 좌우퇴간의 너비가 매우 좁고, 기둥 사이의 넓이에 비해 기둥이 높아 산곡간의 형태를 보여준다. 전면을 모두 개방하여 문짝을 단 특이한 방식으로 되어 있는데, 문짝은 분합문에서 불발기창과 궁판을 중첩시킴으로써 조선 후기에 유행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공포는 중앙 3칸에는 2조, 좌우퇴간에는 1조씩의 공간포를 배열한 다포계이다. 내외3출목을 사용해 법당 내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법당 내부를 금단청으로 장식하여 주목할 만하다.
쌍계사진감선사대공탑비 - 국보 제47호. 신라 정강왕이 진감선사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망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년)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려 환영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원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년)에 입당하여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하였다. 쌍계사를 창건하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 쌍계사에서 77세로 시적하였다. 비 높이 3.63m, 탑신 높이 2.02m다.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현재는 균열과 흠락이 상당히 심해 그 내용을 알아보기 어렵다
쌍계사 대웅전 설명문
대웅전 내부
쌍계사 금강계단 - 불사리를 모시고 수계의식을 행하는 곳이라고 한다
화엄전
쌍계사 목판 대장경 안내문
삼존불 - 불전에 본존과 좌우 협시를 모시는 형식의 불상을 의미하며 심신불, 삼세불이라고도 한다 대개는 법신, 보신, 화신의 세부처를 말하기도 하고 아미타여래와 그 협시인 관음보살, 대세지보살 등을 말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