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李白(이백)

OHO 2016. 1. 31. 21:37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李白(이백)

 

夫天地者(부천지자) 萬物之逆旅(만물지역려)

光陰者(광음자) 百代之過客(백대지과객)

 

而浮生若夢(이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고인병촉야유) 良有以也(양유이야)

 

況陽春(황양춘) 召我以煙景(소아이연경)

大塊(대괴) 假我以文章(가아이문장)

會桃李之芳園(회도리지방원) 序天倫之樂事(서천륜지락사)

 

群季俊秀(군계준수) 皆爲惠連(개위혜련)

吾人詠歌(오인영가) 獨慙康樂(독참강락)

 

幽賞未已(유상미이) 高談轉淸(고담전청)

開瓊宴以坐花(개경연이좌화) 飛羽觴而醉月(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불유가작) 何伸雅懷(아신아회)

如詩不成(여시불성) 罰依金谷酒數(벌의금곡주수)

 

------------------옮김------------------

 

대저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이요

광음(세월)이란 백대를 지나가는 길손이라,

 

이에 뜬 삶이 마치 꿈과 같아서 그 기쁨은 또 얼마나 되리?

옛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밤늦도록 노닌 것은 실로 까닭이 있었음이라,

 

바야흐로 밝은 봄이 연무서린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괴(세상)는 잠시 내게 글 짓는 능력을 빌려주었으니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아름다운 정원에 모여 

형제간(천륜)의 즐거운 일을 펼치게 되었구나, 

 

여러 아우들은 그 빼어남이 한결같이 惠連(혜련)과 같은데

내 읊조리는 노래 康樂(강락)에 비기면 부끄러울 따름이라,

 

봄밤의 운치 그윽하기 그지없고 격조 높은 대화 갈수록 맑아지네,

옥 자리를 펼쳐 꽃 사이에 앉아서는 

깃털 모양의 뿔잔을 서로 날리며 달빛에 취하네,

 

그렇구나, 좋은 시가 없다면 어찌 雅趣(아취)서린 회포를 펼치리오? 

이에 미처 詩(시)를 짓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저 옛날 金谷酒宴(금곡주연)의 예에 따라 석 잔의 벌주를 마셔야 하리!

 

-------------------해설-------------------

 

대시인 李白(이백)은 자를 太白(태백)이라 했고 도교적 취향도 상당했으나 한편 호를 靑蓮居士(청련거사)로 했을 만큼 불교적 인생관도 지녔던 사람이다. 이 시에도 그런 면모가 잘 나타나있다. 

 

‘아!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이요

광음(세월)이란 백대를 지나가는 길손이라,

이에

뜬 삶이 마치 꿈과 같아서 그 기쁨은 또 얼마나 되리?

옛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밤늦도록 노닌 것은 실로 까닭이 있었음이라,’

 

처음 시작부분이다.  

 

이백이 살았던 때는 중국 당나라 시절, 삶은 六十(육십)을 채우기가 어려웠다. 이에 이백의 눈에 천지 즉 이 세상은 사람을 비롯하여 모든 생명들이 그저 잠시 쉬었다 가는 여관으로 보였을 것이다. 

 

시의 逆旅(역려)란 단어는 旅(여)가 여행을 뜻하니 이에 거꾸로 逆(역)을 붙이면 여행을 쉰다는 뜻이 되어 여행 중의 잠시 쉬어가는 숙소란 의미가 된다. 

 

이백의 눈에 만물이 태어나고 또 죽고 사려져가는 이 세상이란 여관과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또 光陰(광음), 빛과 어둠이란 시간을 말한다. 해가 뜨면 밝고 지면 어두우니 광음은 날인 것이고 날은 바로 시간 또는 세월을 말한다. 이에 광음, 세월이란 알 수 없는 곳에서 시작해서 잠시도 머물지 않고 또 다른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길손이라 이백은 노래하고 있다.  

 

浮生(부생)이란 ‘뜬 삶’이란 말이다. 우리 모두의 삶에 뿌리가 없다는 것이니 그 모습은 연못 위의 부평초와도 같아서 알 수 없는 운명에 의해 떠다니는 삶이라는 뜻이다. 이는 숙명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교의 諸法無我(제법무아), 존재하는 모든 것은 幻(환)과 같아서 그 실체가 없다는 사상과도 닿아있다.  

 

이처럼 우리의 뜬 삶은 마치 꿈속의 일과 같다고 하니 이는 바로 莊子(장자)의 胡蝶夢(호접몽)을 연상케 한다.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던 장자가 깨어나니 사람이더라, 이에 장자는 자문해본다, 나는 과연 나비일까 사람일까? 하고.  

 

꿈꾸는 삶이고 떠다니는 삶이니 어찌 허무가 아니며 슬픔이 아니겠는가! 이에 이백은 그런 우리의 삶에 있어 기쁨은 사실 얼마나 되겠느냐 하고 묻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삶의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듯 이백도 그랬던 것이다. 

 

불교적 슬픔에서 시작해서 장자의 얘기로 이어지고 다시 장자가 주장한 노님, 遊(유)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기쁨은 얼마나 되리 하는 부분에선 慷慨(강개)한 슬픔으로 가득하다. 

 

이에 이백은 옛 사람들이 늦은 밤까지 촛불을 들고 밝히면서 놀았던 것은 뭐 달리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짧은 삶의 기쁨을 누리려는 것이었으니 실로 당연하다고 긍정하고 있다. 짧은 삶일수록 더욱 열심히 놀아야 하지 않겠는가!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하는 우리 가락은 사실 이백의 시와 정확하게 동일한 ‘삶의 讚歌(찬가)’인 셈이다. 

 

그리고 이백이 남긴 浮生若夢(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이란 이 구절은 동아시아 문화에 있어 실로 지대하고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다시 얘기지만 이 구절이 미친 우리와 중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영향은 정말 엄청나고 또 엄청난 것이다. 이에 이 구절에 담긴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비록 그 사람이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일본 사람이든 상관없이 동아시아 문화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浮生六記(부생육기)란 책이 있으니 나는 문언소창 코너를 통해 소개한 바도 있다. 동아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산문이다. 책 제목은 물론 이백의 시에서 따왔다. 

 

그리고 일본에는 우키요에, 浮世繪(부세회)라는 미술 양식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 김홍도의 다양하고도 생생한 풍속화가 있었지만 일본에서는 더 많은 화가들이 더욱 다양한 풍속화를 그려내었다. 浮世(부세), 뜬 세상을 그린 것이니 일반 서민들의 경박하고 속물적인 그러나 진진한 삶의 모습과 풍경들을 그렸던 것이 우키요에이다. 

 

떠있는 삶이니 그런 사람들이 살다가는 세상 역시 떠다니는 세상인 것이다. 

 

주로 목판화로 제작이 되었는데 畵法(화법)이 대단히 특이하다. 목판화로 다량 인쇄되다보니 유럽으로 수출되는 일본 도자기 상자의 포장지로도 사용되었던 모양이다. 

 

이를 본 프랑스의 화가들은 우키요에로부터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그들 눈에 우키요에의 화법은 새로운 것이었고 소위 ‘모던’한 것이었다. 이리하여 우키요에는 프랑스 인상파 그림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고흐나 고갱의 그림에는 유키요에의 영향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20 세기 초반 서구에서 생겨난 모더니즘과 신고전주의의 가교 역할을 한 ‘아르 누보’ 운동은 사실 우키요에가 서구에 준 충격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로트렉의 포스터 역시 따지고 보면 우키요에의 프랑스 식  해석이다. 

 

물론 유럽인들은 우키요에의 바닥에 놓인 문화적 정서의 본질을 이해하지는 못 했다. 다만 스타일로서 유럽에 영향을 주었을 뿐이지만, 문화란 이런 식으로 합성이 되고 새롭게 영향을 주고 또 받는다. 

 

일본인들은 인생이 덧없다는 관념을 강하게 지니고 있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일본인들이 유교적 관념보다도 불교적 염세주의를 더 강하게 받아들였음을 말해준다. 

 

그렇기에 일본인들에게 浮生(부생)이나 浮世(부세)의 관념은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강하게 다가갔던 모양이다. 

 

일본 전국시대 오다 노부나가에 이어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 역시 임종 직전에 시를 남겼으니 ‘인생은 꿈속의 또 꿈’이라고 했다. 권력자도 이런 유의 멋을 부렸으니 일본인 특유의 死生觀(사생관)이라 하겠다. 

 

일본인들은 지금도 중국의 唐(당)나라 시절의 문화를 대단히 숭상하는데 바로 이백이 남긴 오늘 소개하는 詩(시)가 그런 면에 있어 큰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일본인들의 성문화 역시 우리와 상당히 다른데, 남녀가 눈이 맞으면 바로 교합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경박하다고 느끼지만 실은 뜬 삶이 꿈같은데 좋은 일이라면 무엇을 망설이겠냐는 생각이 그 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浮生若夢(부생약몽) 爲歡幾何(위환기하)라는 이 시구에 대한 해설이 제법 길었으니 말을 줄이고 다음으로 넘어가본다. 

 

‘바야흐로 

밝은 봄이 연무서린 경치로 나를 부르고

대괴(세상)는 잠시 내게 글 짓는 능력을 빌려주었으니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아름다운 정원에 모여 

형제간(천륜)의 즐거운 일을 펼치게 되었구나,’ 

 

추운 겨울이 가고 따뜻하고 밝은 봄이 오니 만물이 살아나고 백화가 피어난다, 거기에 더하여 땅속에서 수분이 증발하면서 옅은 안개가 서리고 있는 밤이다. 

 

이백은 여러 집안 형제들을 불러 나이트 가든 파티를 열었다. 봄밤에 등불을 휘황히 밝히고 詩會(시회)를 열은 것이다. 

 

시에 나오는 大塊(대괴)란 단어가 재미가 있다. 큰 덩치란 말인데 이 세상이 커다란 땅덩어리인 까닭이다. 그리고 잠시 빌려주었다는 말은 어차피 유한한 삶이니 시 짓는 능력 역시 빌려준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백은 이미 시 잘 짓기로 명성을 떨칠 만큼 떨치고 있었으니 능력을 잠시 빌려주었다고 짐짓 겸손을 떨고 있지만, 사실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야간 시회를 연 장소는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어난 아름다운 야외 정원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桃李園(도리원)이라 하고 있다. 

 

여러 집안 형제들이 왔으니 눈치 볼 것도 별로 없고 마냥 유쾌하고 즐거운 모임이었을 것이다. 

 

이어 시 내용을 보자. 

 

‘여러 아우들은 그 빼어남이 한결같이 惠連(혜련)과 같은데

내 읊조리는 노래 康樂(강락)에 비기면 부끄러울 따름이라,’

 

보면 惠連(혜련)이란 이름이 나오고 또 康樂(강락)이란 이름이 나온다. 

 

누굴까? 

 

먼저 康樂(강락)이란 康樂公(강락공)의 약자로서 이백보다 2 백여 전에 살았던 謝靈運(사령운)이란 시인을 말한다. 이에 혜련은 사령운의 동생이다. 

 

긴 얘기가 있지만, 최대한 짧게 설명해보자. 

 

중국의 조조 유비 손권이 주름잡던 삼국시대가 끝나고 사마씨에 의해 晉(진)으로 통일이 된 다음 주변의 이민족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면서 중국 양자강 북쪽은 이민족의 왕조들이 자리하고 이에 정통 중국 왕조의 족벌과 그 무리들은 양자강 이남으로 내려가 東晋(동진)을 건국했다. 

 

사령운은 중국 북방에서 내려온 名門(명문) 巨族(거족)인 謝(사)씨의 자손으로서 조부가 큰 戰功(전공)을 세워 강락공에 봉해졌기에 사령운을 사강락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령운은 정치 투쟁에서 불리하여 중요 요직에서 밀려났고 이에 사령운은 아름다운 산수에 마음을 두고 많은 시를 지었으니 이른바 山水詩(산수시)가 그것이다. 

 

산수를 묘사하면서 그 속에 시인의 감정을 이입하는 기법은 훗날 중국 당나라의 시 즉 唐詩(당시)의 전형이 되었다. 

 

아름다운 중국 唐詩(당시)의 핵심적 원형을 사령운이 제시했으니 삼국시대의 曹操(조조)로 대표되는 建安七子(건안칠자)의 문학과 더불어 이백이 존경하고 흠모해마지 않았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여기서 잠깐 언급할 것은 사령운의 산수시야말로 중국 산수화의 시작을 촉발시켰다는 사실이다. 

 

산수화는 산수시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고, 또 산수화를 보면 산수시를 짓고싶은 감흥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중국 산수화는 바로 그림이자 문학인 것이다. 文人畵(문인화)란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 즉 文人(문인)이 그림을 그린 것이다. (문인화에 대해 실로 할 말이 많지만 분량 관계상 줄이기로 한다.)

 

돌아가서 사혜련은 강락공 사령운의 동생으로서 역시 詩才(시재)가 뛰어나 형이 시를 지을 때 곁에서 많은 영감을 주었으니 사령운은 내 동생 혜련이 정말 뛰어나다고 늘 칭찬하고 다녔다 한다. 

 

그러니 이백은 시에서 여러 친척 형제들과 동생들 역시 뛰어난 詩才(시재)를 지녔다고 칭찬하는 동시에 은근히 자신을 사령운에 비기고 있는 것이다. 

 

동생들의 시는 모두 사혜련 만큼이나 뛰어난데 내가 짓는 시만 강락공 사령운에 비기면 부끄러우니 어쩌지 하는 말은 사실 자신이 사령운에 버금간다는 自負(자부)의 표현이라 하겠다. 

 

이어 다음 부분을 감상해보자. 

 

‘봄밤의 운치 그윽하기 그지없고 격조 높은 대화 갈수록 맑아지네,

옥 자리를 펼쳐 꽃 사이에 앉아서는 

깃털 모양의 뿔잔을 서로 날리며 달빛에 취하네,’

 

밤에 휘황하니 등불을 곳곳에 밝혀놓고 벌린 酒宴(주연)은 실로 즐거웠을 것이다. 봄밤의 온화한 공기 사이로 안개서린 먼 언덕과 숲의 정취가 얼마나 아름다웠을까나. 

 

이에 형제들 사이에 나누는 대화는 정치 경제에서 시작해서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그 격조가 더 높았갔을 것이고, 풀밭에 자리를 펼쳤으니 瓊延(경연), 옥자리라 표현하고 있으며 그 사이로 봄꽃이 만발하여 향기 또한 그윽했을 것이다. 

 

새의 깃털 모양으로 깎아낸 술잔, 羽觴(우상)을 날린다는 표현을 쓰고 있으니 오가는 술잔이 활발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어 봄밤에 달이 떴는지 거나해진 눈으로 달을 바라보며 즐긴다. 잔치의 흥은 한창 고조되고 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을 감상할 차례가 왔다. 

 

‘그렇구나, 좋은 시가 없다면 어찌 雅趣(아취)서린 회포를 펼치리오? 

이에 미처 詩(시)를 짓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저 옛날 金谷酒宴(금곡주연)의 예에 따라 석 잔의 벌주를 마셔야 하리!’

 

이에 이백은 명성 높은 시인답게 이 좋은 분위기에 어찌 회포를 담은 시 한수가 없을 수 있겠느냐 하고 시짓기를 하자고 한다. 그리고 만일 봄밤 주연의 흥겨운 분위기를 담은 좋은 시를 짓지 못한다면 그 벌도 응당 있어야 한다고 분위기를 조성한다. 

 

먼 옛날 晉(진)대의 재력가였던 석숭이 자신의 별장 金谷園(금곡원)에서 수시로 잔치를 열고 시짓기 모임도 열어 풍류를 즐겼으니 초대된 손님 중에서  시를 주어진 시간 내에 짓지 못하면 그 벌로 석 잔의 罰酒(벌주)를 마시게 했다는 故事(고사)에 따르겠다는 것이다. 

 

술 한 말에 시 백편을 지어내던 이백의 豪放(호방)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제 시 해설과 감상을 마칠까 한다. 시의 내용도 자세히 알아보았으니 다시 한 번 이백의 시를 편안하게 풀어서 감상해보자. 

 

아! 

천지는 만물이 잠시 쉬어가는 여관이니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세상이구나,

그런가 하면 

광음(세월)이란 백대를 지나가는 길손이니 

머물고 싶어도 되지 않는 삶의 시간들이라, 

이에

뿌리 없이 뜬 우리들의 삶은 그저 꿈속의 일과 같으니 덧없고 슬프구나, 

그러니 우리가 살면서 누리는 기쁨이야 사실 얼마나 되리오?

일찍 듣기로 옛사람들이 촛불을 밝히고 밤늦도록 놀았다고 하는데 오히려 그게 당연한 일 아닌가 싶구나, 

 

바야흐로 

겨울 지나 따뜻하고 밝은 봄이 옅은 안개 자욱한 

아름다운 경치를 만들어 내 속의 흥취를 일깨우고,  

내 시 좀 짓는 능력으로 명성을 다소 얻어 남들은 나를 천재라 하지만 

사실 그거야 세상이 내게 능력을 잠시 빌려주었을 뿐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하리오? 

하지만 이에 좋은 날 저녁을 택해   

복숭아꽃 오얏꽃 피는 아름다운 정원에 

격의 없이 흉금을 나눌 집안의 여러 형제간들을 불러 

즐거운 주연을 펼치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리,  

 

그냥 술만 먹고 놀 수는 없는 일, 

마침 집안의 여러 아우들은 시짓는 능력이 

먼 옛날 사령운의 동생 사혜련에 버금가니 

나 역시 사령운에 비하면 부끄럽지만 

나도 기꺼이 시를 한 수 지어보리라, 

 

보라, 봄밤의 운치 그윽하기 그지없고 

격조 높은 대화 갈수록 맑아지지 않는가 말이다, 

이에 옥 자리를 펼치니 사이로 봄꽃은 밤공기에 취해있고

우리들은 깃털 모양의 뿔잔을 흥겹게 날리듯 주고 또 받으니 

마침 떠오는 저 달빛에 취하네,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좋은 시가 없다면 어찌 우리들의 雅趣(아취)있는 

속내를 펼쳐 낼 수 있겠는가? 

이에 미처 詩(시)를 짓지 못하는 아우님들이 있다면  

저 옛날 재력으로 세상에 이름을 떨친 석숭이 베푼 

金谷酒宴(금곡주연)의 예에 따라 석 잔의 벌주를 마셔야 하리!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잔뜩 대취해봄도 좋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