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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증세' 二分法의 함정

OHO 2015. 2. 12. 18:50

'복지·증세' 二分法의 함정

  • 김기훈 디지털뉴스본부 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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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훈 디지털뉴스본부 콘텐츠팀장 사진

     

    입력 : 2015.02.09 03:00

     
     

    복지 구조조정과 증세(增稅) 이슈로 나라가 시끄럽다. 여당과 야당은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 법인세율 유지와 인상을 놓고 논란을 벌인다. 정부는 "국회에서 먼저 합의가 이뤄지길 바란다"며 공을 여의도로 떠밀고 있다.

    그러나 복지와 세금의 맞대결 속에 중요한 단어가 빠져 있다. 경기(景氣)이다. 세금과 복지도 경기 흐름에 따라 구체적 모습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서 정부가 경제를 제어하는 정책 수단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다. 오랜 역사적 경험에 따라 정책 당국자들은 경기가 나쁠 때는 정부 지출을 늘리고 세금 부담을 낮추며 금리를 인하하는 확장정책을 사용한다. 경기가 지나치게 좋을 때는 정부 지출을 줄이고 세금을 더 걷으며 금리를 올리는 긴축정책을 쓴다. 이러한 경기 조절 속에서 개인소득세율, 법인세율, 주택대출금리가 정해진다. 정부가 경기의 흐름을 잘 타는 세금·금융 정책을 쓰면 큰 위기도 쉽게 넘어가지만 타이밍이 잘 맞지 않으면 쪽박을 찬다. 정책 실패는 수많은 신용불량자와 파산자를 길거리로 내몬다.

    한국의 경기는 지금 어떤 상황인가. 경제 전문가들은 1990년대 일본의 장기 침체를 따라가는 듯하다고 걱정한다. 일본은 정부가 경기 흐름을 잘못 읽고 정책 대응에 실패한 탓에 '잃어버린 20년'을 겪어야 했다.

    일본 경제는 1970년대 말 제2차 오일파동 이후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며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에 나섰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두 배로 높아졌지만 유가 하락이란 호재 덕분에 경기가 좋아 주가와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1990년 초에 주가 폭락이 시작됐고 걸프전 영향으로 유가도 2배, 3배로 뛰었다.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이 부서지기 시작했지만 일본 정부는 정책금리를 1990년 6%대에서 1991년 8% 수준으로 높였다. 경제가 나빠질 조짐을 보이면 금리를 낮춰야 하는데 상황을 오판해 오히려 올린 것이다. 1997년에는 경기 침체로 인한 물가 하락(디플레이션) 속에서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 증세 정책까지 썼다.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했다. 그러자 소비세 인상 시점 이전에는 사재기 현상이 빚어지다가 세금 인상 이후에는 손님이 뚝 떨어졌다. 세금 인상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이 소비 자체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아시아 금융위기가 겹쳤다. 은행과 증권사가 파산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이렇게 진행됐다. 경기 흐름에 대한 오판, 흐름과 어긋난 조세·금융 정책은 국민 복지뿐 아니라 경제 자체를 파탄 낸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경제는 매일 바뀌는 생물이니 세율이나 금리도 오르락내리락한다. '25%는 옳고 22%는 틀리다'는 식의 정답은 없다. 전문가들이 치열한 논쟁을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도 '주식회사 한국'의 경기 흐름에 대한 진단에 근거해 이뤄져야 한다. 복지와 세금의 이분법에만 빠져 있으면 탈출구 없는 정치적 공론(空論)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